[사설] 무주택 우선공급 확대, 갈아타기 수요도 고려해야

강력한 ‘9·13 부동산대책’ 발표로 부동산시장이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대책에 포함된 청약규제 강화 조치에 대한 청약통장 가입자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무주택자 우선 공급에 집착한 나머지 1주택자의 신규 아파트 갈아타기 수요를 사실상 봉쇄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는 ‘청약 무능통장’이니 ‘영구 장롱통장’ 같은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토교통부의 청약제도 개편안에 따르면 서울 등 투기과열·조정지역에서 아파트를 분양할 때 추첨제 공급분은 무주택자에게 우선 배정된다. 주택을 보유한 청약통장 소지자로서는 당첨 기회가 사실상 박탈되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주택 크기와 규제 지역에 따라 총 공급물량의 25~70%를 주택소유와 상관없이 추첨으로 당첨자를 뽑고 나머지는 청약가점제로 배정한다.


더 큰 문제는 매매시장에 쏠리는 풍선효과다. 신규 주택 갈아타기 수요자들이 청약시장에서 소외되면 이들이 기존 주택시장으로 몰리고, 이는 결국 집값 안정에 역행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미 수도권 분양시장은 청약가점제 도입 이후 가점이 높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새 주택 갈아타기 수요자로서는 청약가점제에 밀리고 무주택자에게 치이는 꼴이다.

무주택자 우선 공급제를 무조건 반대한다는 말은 아니다. 주거복지 차원에서 무주택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채의 집을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당첨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정부가 청약통장 가입대상을 미성년자까지 허용해놓고 이제 와서 주택소유자를 배제하는 것도 모순이다. 극단적이긴 하나 무주택 미성년자까지 청약우선권을 주는 것은 말이 안된다. 청약통장의 식물화 불신이 쌓이면 이를 재원으로 하는 주택도시기금이 줄고 서민주택 공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정책이든 부정적 파급효과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취지에서 보면 청약규제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 범위를 사전에 파악해야 함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2,000만명의 청약통장 가입자 가운데 주택소유자별 통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당국의 무신경과 무지가 놀라울 따름이다. 한 푼의 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지 않는 민영주택이나 대형 주택에 대해서는 굳이 청약 차별을 둘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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