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충주거점산지유통센터에서 한 직원이 사과 추석선물세트를 포장하고 있다. /사진제공=홈플러스
“새빨간 사과만 맛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색보다 숙성도가 중요해요. 올해 사과 농사는 폭염으로 망했지만 햇볕 아래 오래 있었던 만큼 사과(홍로)의 당도는 프리미엄급입니다.”
지난 13일, 추석선물세트 공급에 막바지 힘을 쏟고 있는 충주거점산지유통센터에서 새빨간 사과를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한 입 베어 문 사과의 맛은 예년과 다를 바 없이 달았다. 이상복 충주거점산지유통센터장은 “통상 12 브릭스 이상을 상품화하고 14 브릭스 이상은 명품 사과로 보는데 이번 홍로는 15~16 브릭스까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도는 여느 때 못지 않게 높지만 올해 사과가 입은 피해는 심각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 동향에 따르면 올해 사과의 생산량은 지난해 대비 15%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국거점산지유통센터 중 1위인 충주거점산지유통센터도 지난해 유통량(8,000톤)에 비해 사과 물량이 줄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폭염, 폭우 같은 잔피해만 이어져 보상을 받지 못하다 보니 차라리 태풍이 왔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든다”면서 “사과 생산량 급감으로 올해 도산하는 과수원은 20% 가량 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사실 사과 피해는 올 초부터 예고된 바나 다름없었다. 5월 무렵, 냉해 피해를 입은 사과꽃이 우수수 떨어진 게 시작이었다. 가까스로 가지에 매달린 꽃도 품질 좋은 사과로 자라지 못했다. 사과가 정화(가지의 첫 번째 피는 꽃) 대신 액화(정화를 에워싼 꽃)에서 자라난 탓에 태생부터 품질이 떨어진 것이다.
이어진 폭염은 사과에 큰 내상을 입혔다. 사과의 가장 좋은 생육 조건은 25도에서부터 15도(10도의 일교차)이지만, 폭염 탓에 사과는 하루종일 더위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사과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색은 누렇게 변했다.
충주시 동량면의 한 사과 농장에서 만난 김택성(64)씨는 “41년 사과 농사 인생에서 이런 피해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해는 20톤을 생산했는데 올해는 12톤 물량으로 줄었다”면서 “상품화되지 못하는 사과는 주스 공장으로 보내는데 추석세트로 공급할 때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인 1kg당 250원 정도만 받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부사 작황도 좋지 않아 설 세트 물량 공급도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냉해, 폭염, 폭우로 이어진 기후조건 악화로 추석선물세트에 쓰이는 홍로 물량은 작년보다 40% 줄었다. 게다가 프리미엄급 추석선물세트의 경우 지난해의 2만 상자보다 2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1,000상자만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반면 상품화가 불가능한 2등과의 비율은 전년 대비 두배 가까이 늘었다.
대과 품귀 현상으로 추석선물세트 물량을 확보하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기존과 같은 기준대로 사과에 등급을 매기면 사과 한 상자를 채우지 못할 상황. 홈플러스 등 국내 유통 업체는 사과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을 탄력적으로 조정했다. 전형욱 홈플러스 과일팀 바이어는 “물량을 확보하는 동시에 농가의 상황을 배려하기 위해 평소라면 상 등급 정도인 사과를 특 등급으로 매겨 가격을 쳐줬다”고 말했다.
/충주=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