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왼쪽)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군사 분야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공동선언은 핵심 의제인 2차 북미정상회담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과 조건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등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회담의 목표를 새로운 선언이나 합의보다 북미 비핵화 회담 중재에 있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이에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리스트 신고’ 같은 비핵화 조치를 통해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이번 회담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평양선언에는 그간 미국이 요구해온 비핵화 조치가 명문화돼 2차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유일한 장거리 탄도미사일(ICBM) 시험장을 유관국 전문가가 참관하는 가운데 영구 폐기한다고 합의문에 담아 북핵 리스트 신고에는 못 미치지만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평양공동선언 발표 직후인 19일(현지시간) 트위터에 “김 위원장이 핵사찰을 허용하고 국제 전문가들 앞에서 핵 실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영구적으로 철거하는 데도 합의했다”며 “그동안 어떠한 미사일과 핵 실험은 없을 것”이라며 2차 북미정상회담의 전망을 밝게 했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기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점을 모두 고려하면 평양 정상회담 이전에 한미가 충분히 조율한 상황에서 공동성명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북미정상회담이 예상보다 상당히 빠르게 전개돼 오는 10월 중순쯤 열릴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라는 불가역적인 핵 폐기 방안을 북한 최고지도자가 공식적으로 약속한 것도 의미가 있다. 지난 2007년 6자회담 수석대표급 협상의 전례를 보면 ‘불가역적인 핵 폐기 단계’는 △핵시설 핵심 부분 파괴 △핵물질 국외 반출 △핵무기 국외 반출 및 핵무기 제조시설 해체 △우라늄 농축시설 핵심 부분 해체다.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의 핵심으로 알려진 영변 핵시설 폐기는 김 위원장이 북미협상을 앞두고 비핵화의 진정성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의사를 밝힌 것을 두고 미국이 그동안 종전선언에 대한 상응 조치로 요구한 ‘핵 리스트 신고’에 맞대응하기 위해 북한이 ‘역제안’ 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 교수는 “풍계리·동창리 시험장이 미래 핵이라면 영변은 현재 핵인데 미래 핵도 폭파하고 현재 핵도 폐기한다면 남은 것은 이미 생산한 과거 핵밖에 없다”며 “영변 핵시설 폐기는 북미가 한발씩 발전되고 진전해가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합의문에는 미국이 강조하는 북핵 리스트 제출 등 핵심 비핵화 관련 의제들이 빠져 있고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2년)라는 촉박한 비핵화 시간표에 비해 점진적인 비핵화 방식은 향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 북한은 미국의 상응 조치라는 조건을 달고 있어 이를 두고 북미 간 신경전이 예상된다. 앞서 북미는 6·12 센토사선언 이행을 위해 각각 종전선언과 핵 리스트 신고 등 상응 조치를 할 것을 서로에 요구하며 반목해왔다. 영변 핵시설 외에 북한의 비밀 핵시설 의혹을 받고 있는 ‘강성’ 핵시설의 존재도 불안요소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6월 북한이 핵탄두 및 관련 장비시설 은폐를 추구하고 있다며 미 국방정보국(DIA) 보고서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정보당국은 2010년 강성으로 알려진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의 존재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내 강경파들이 이를 근거로 비핵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가질 경우 북미 비핵화 협상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질 수 있다.
/평양공동취재단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