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계가 ‘울며 겨자 먹기’로 고위험 채무의 회수를 늦춰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금융 당국이 채무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며 소액채무에 대해서는 연체가 발생해도 최장 세 달까지는 빚을 회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서다. 이에 따라 연 금리 20%를 크게 웃도는 대부업 대출의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대부금융협회는 최근 대부업체들에 소액연체채무 기한이익상실유예 제도 도입을 안내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적용 대상은 지난해 말 기준 자산 500억원 이상의 대부업체로 내년 상반기부터 소액연체채무 기한이익상실 시점을 3개월로 늦추는 방안이 도입될 예정이다. 기한이익이란 채무자가 만기까지 금융기관에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권리다. 통상 대출 계약을 맺으면 기한이익이 생기는데 대출자가 대출 원리금을 연체할 경우 기한이익이 상실돼 금융사는 만기 전에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대부업체는 차주가 연체가 발생하는 등 부실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더라도 세 달 동안 채무를 회수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금융 당국이 채무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대부업체를 포함한 모든 금융사를 대상으로 기한이익상실유예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업계는 은행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데 대해 반발하고 있다. 대형 대부업체의 한 관계자는 “대부업을 이용하는 채무자와 은행에서 빌리는 차주가 엄연히 신용상의 차이가 큰데 이를 무시하고 채무자의 입장만 고려해 일률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는 셈”이라며 “소액이라고 해서 떼여도 상관없다는 말이냐”고 꼬집었다.
대부업체에서 빌린 대출은 신용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가 20% 이상의 높은 금리로 빌리기 때문에 연체 가능성이 다른 업권에 비해 훨씬 높다. 하지만 은행권에서 저신용자 대출을 거절하면서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차주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부잔액은 지난 2015년 말 13조2,462억원에서 지난해 말 16조5,014억원으로 증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업 이용자 중에는 다중채무자가 많기 때문에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특히 부실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부업체는 생활비 명목으로 소액대출을 빌리는 차주가 많아 기한이익상실유예 도입에 따른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업체의 한 관계자는 “올해부터 개인회생 변제기간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돼 상환받지 못하는 빚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소액대출마저 회수가 어려워지면 영업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대부협회 관계자는 “이 제도는 자율 규제로 도입을 추진 중이어서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