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이종석 감독은 ‘상대의 진심’을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재적인 측면에선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협상’이란 새로운 소재를 다뤘다는 점이 주목 받았지만, 감독 개인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진리가 뭘까?’에 대한 관심과 고민에서 시작된 영화다.
19일 개봉한 ‘협상’(감독 이종석·제작 JK필름)은 태국에서 사상 최악의 인질극이 발생하고, 제한 시간 내 인질범 ‘민태구’(현빈 분)를 멈추기 위해 위기 협상가 ‘하채윤’(손예진 분)이 일생일대의 협상을 시작하는 범죄 오락 영화.
영화 ‘협상’ 스틸
영화 ‘협상’ 스틸
이 영화의 핵심은 ‘왜 사람들이 태구의 진심을 모를까?’이다. 태구가 왜 협상을 시작하고 진술을 하려고 하려는지는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된다.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은 감독이 생각했던 ‘삶’이랑 비슷했다. 결국 ‘사람은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의 진심에 대해 알아가면서 성장’하게 된다. 영화 속 하채윤이 계속 민태구의 진심을 알고 싶어 하듯 말이다.
“삶이란 게 나 아닌 타인의 진심을 알아가는 과정이잖아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은 맺지 못했지만, 삶의 과정에 제 스스로 의미를 뒀던 것 같아요. 부모,형제, 남편, 마누라. 자식, 친구, 문재인 대통령, 혹은 지나가는 사람의 진심은 뭘까요? 그 사람의 속마음까지는 모를 수 밖에 없어요. 이 사람이 왜 이 이야기를 할까요? 다 탈을 쓴 채 말하고 행동하잖아요. 진짜 모르겠어요. 조감독 때는 알았는데 점점 모르겠어요. 영화란 게 웃고 즐기는 영화로 끝날 수도 있지만 조금은 현실을 반영할 수 있었음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이종석 감독과의 대화는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 속에서 그가 작품을 대하는 마인드를 느낄 수 있었다. 이종석 감독은 솔직하고 편한 감독으로 불린다. 정작 본인은 “전 솔직하지 않다. 편하게 사람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는 소견을 밝혔다.
“‘솔직하다’ 그건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이렇게 감독의 권위가 없는 솔직한 감독은 처음이라고 하시는데, 전 솔직하지 않아요. 전 사람을 편하게 만나는 게 좋아서 그렇게 말하는건데, 다른 이들은 저의 모습을 보고 ‘그런 이야기하면 안 된다. 저런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말해요. 현실에선 많이 혼나기도 해요. ”
이종석 감독 /사진=양문숙 기자
“오늘 입고 나온 옷도 동대문에서 다 산 것입니다. 제가 연예인도 아니고 배우가 아니잖아요.(비싼 건 아니라도 깔끔하게 입고 나오는 건) 일종의 예의라고 생각해요. 평상시엔 헐렁 헐렁하게 입고 다녀요. 하지만 타인을 만날 땐 보기 좋은 모습으로 만나는 걸 원해요. 사람의 실제 모습과, 다른 사람이 봐주길 바라는 자기 모습이 달라요. 결국 인생은 그걸 통해서, 만나기도 하고 안 만나기도 해요. 사람 뿐만 아니라 일에서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거기서 선택을 해야 해요.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요.”
이종석 감독은 JK 필름의 ’협상‘ 프로젝트’를 만난 뒤, 심경을 “‘괜찮다’와 ‘괜찮을까?’ 사이에서 고민한 시간이 길었다”고 털어놨다. 그의 표현대로 아이를 성인으로 키운 2년의 시간이 ‘협상’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그의 목표는 “제한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내어 예측불가하고 날 것의 느낌이 살아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어요. 누구도 안 가본 곳을 가보고 싶었죠. ’협상‘ 프로젝트’를 만나서 다양한 영화들을 찾아봤는데 비슷한 영화가 거의 없었어요. 관심이 생겼죠. 실제 사건들도 찾아보면서 머릿 속에 구상을 하는데, ‘괜찮다’와 ‘괜찮을까?’로 기대감과 고민이 생겼어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없는 한정된 공간에서, 긴장감 있게 끌고 가야 하는 미션은 감독의 도전의식을 자극했다. 하지만 ‘협상’이란 소재를 가지고 밀도감 있는 이슈를 스크린에 담기엔 쉽지 않아 보였다. ‘127시간’(2010), ‘폰 부스’(2002) 등 갇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영화는 있었지만 ‘협상’은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협상만으로 2시간을 끌고가는 이야기라 또 다른 긴장 포인트와 개연성이 있어야 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협상을 보여줘야 하는 작품인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었어요. 협상이란 소재만 가지고선 이야기를 끌어내기 힘들다는 점도 지적됐던 부분입니다. 협상 소재 이야기를 살펴보면, 주로 자살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협상이 대부분이었어요. 들려오는 이야기는 ‘뻔하다’가 많았죠. 윤제균 감독님을 만나고 이야기를 계속 키웠어요. 힘을 주셔서 연출자로서 욕심이 생겼어요. ‘해보고 싶다’ ‘너무 힘들 것 같다’를 왔다갔다 하다, 결국 ‘힘들어도 해보고 싶다’고 굳혔어요. 연출하는 사람에겐 마약 같은 도전 의식이었죠. 저에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인데 잘 해내고 싶었어요.”
범죄오락 영화를 표방한 ‘협상’이지만, 고위층 비리 및 고질적인 방산 비리 역시 건드리며 단순히 즐기고 끝나는 영화로만 달려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래서 평범한 범죄영화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이기도 했지만, 이종석 감독은 “작은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연출의도를 전했다.
“첫 영화라고 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마음이 제일 컸어요. 그 다음은 조금은 이 사회를 반투명하더라도 비춰줄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했어요. 조금은 현실을 반영할 수 있었음 해요. 이 영화가 어찌보면, 거대 권력에 이용당하고 소모된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있어요. 새로운 걸 한다고 비리를 저지른 그 사람들을 다 총으로 쏘거나 폭탄을 터트려 죽일까요. 그건 현실이 아니잖아요. 저희 영화가 하늘 을 날라다니는 마블 영화가 아니에요. ‘ 뭔가 될거야’, ‘뭔가 할거야’ 란 작은 희망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들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조금씩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건드리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지금은 영화적으로 조금 모자랄 수 있지만, 그런 영화들에 대한 관심이 있어요.”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