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 서비스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제한적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 중인 가운데 의료인 단체가 일제히 반대 입장을 정하면서 대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원격의료는 정부의 의료복지 강화 정책인 이른바 ‘문재인 케어’의 핵심 중 하나여서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다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기존 대한의사협회에 이어 대한병원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협회, 대한간호협회가 정부의 원격의료 도입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통상 동일 사안을 놓고 의료인 단체끼리 대립하는 경우는 많지만 한목소리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현재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더불어민주당, 청와대와 함께 제한적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검토 중이다. 군부대, 교정시설, 원양어선, 산간도서벽지 4개 유형에 한해 의료인과 환자의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현행법상 의료인과 환자의 원격의료는 불법이다. 의료법 34조에 따르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에 한해 의료진끼리 자문하는 형태의 원격의료만 허용된다. 정부는 지난 2000년 강원도의 한 보건소를 시작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돌입했지만 의료계의 반발에 막혀 올해까지 19년째 시범사업만 시행 중이다.
의료인 단체가 한목소리로 제한적인 원격의료에 반대하는 가장 큰 명분은 대형병원 쏠림 현상과 의료사고 조장이다. 의료행위는 기본적으로 의료인과 환자가 직접 만나는 대면진료가 원칙이기에 환자의 건강권과 정확한 진료를 위해 원격의료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한적 원격의료가 결국 전면적인 원격의료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의료인 단체의 공통된 주장이다. 원격의료의 장점에 대해서는 일단 공감하지만 성급한 원격의료 도입은 지금도 심각한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부추기고 동네의원의 몰락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원격의료가 의료영리화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의료인들은 정부가 의료법 개정안을 통해 제한적 원격의료를 도입할 경우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인 단체 중 가장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대한의사협회는 총파업까지 불사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원격의료는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기에 정부가 일자리 창출 등을 명분으로 이를 강행하는 것은 직무유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이오·제약업계는 이번 기회에 제한적으로나마 원격의료가 도입되지 않으면 원격의료 산업의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미 미국과 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대대적으로 원격의료 서비스를 도입하는 마당에 제한적 원격의료마저 원천봉쇄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내 딛은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 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 제한적으로 원격의료를 도입하겠다는 건데 이마저도 의료인이 반대하는 것은 ‘밥그릇 지키기’로밖에 볼 수 없다”며 “이번에도 제한적 원격의료 도입이 무산되면 국내 바이오기업의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