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소속 연구원이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서울경제DB
국내 반도체 산업의 불균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칩 설계 능력이 갈수록 중시되는 4차 산업 혁명을 맞아 ‘사일로(silo·다른 조직과 교류·협업하지 않는 것) 현상’을 극복하지 못 하면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구용서 단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기업 간 협업 시스템 구축을 강조한다. 구 교수는 “대만만 해도 최대 팹리스 업체 미디어텍과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의 협업 시스템은 부러울 정도”라며 “TSMC의 도움이 없었다면 미디어텍의 성장은 가능하지도 않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국내의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DB하이텍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간에 연계가 전혀 안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다 보니 반도체 분야도 특정 분야만 웃자라게 되고 인재 쏠림 현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종선 홍익대 교수는 “교수는 물론 석박사 학생들도 메모리로만 몰릴 뿐 시스템 반도체를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비메모리 분야에 예산을 지원하더라도 우수 인재가 없어 공공 부문의 마중물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지경까지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중국 업체 수는 1,400개에 이른다. 반면 국내 업체 수는 고작 100여 개에 불과하다. 메모리 강국이 무색한 지경이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이 대형 고객 위주로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벤처 중심의 국내 팹리스 업체들은 성장의 자양분을 내부에서 얻기 힘들다. 결국 국내 팹리스들은 대만 파운드리 등 외부 업체로부터 일감을 구해야 하는데 경쟁력에 한계가 뚜렷하다. 국내 팹리스 업체로서는 게(실력을 배양할 비즈니스 기회)도 구럭(잠재적 엔지니어 확보)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의 두뇌 격인 인공지능(AI), 중앙처리장치(CPU) 등이 모두 시스템 반도체 영역이라는 점에서 설계기술 인력 양성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긴 호흡으로 엔지니어 풀을 넓혀야 한다는 조언이다. 업계의 한 임원은 “국내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를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정된 자원을 잘 안배했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전략적 지원을 통한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중국만 해도 반도체 굴기를 마치 몇 년 만에 내놓은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이런 계획을 세운 지 20~30년이 됐다”며 “중장기 마스터 플랜에 따라 자금 지원, 산학연 연계 등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구 교수는 “대기업들의 설계자산(IP)이 외부에 더 공개되고, 연구소·대학 등에서 사장되고 있는 IP도 리모델링을 통해 상용화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야 인재 폴이 확대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