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송은석기자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해온 한국은행이 다음 달(10월)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금리 동결 요인과 인상 요인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금기로 여겨지는 ‘금리’ 발언을 한데다 한은의 부동산 시장 과열 책임론까지 불거지면서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는 경제상황보다 ‘명분’이 더 중요하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명분을 고려할 때 당초 10월로 점쳐졌던 한은의 금리 인상 시기가 11월로 늦춰질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한은의 금리 결정을 둘러싼 쟁점을 정리해봤다.
◇깜빡이는 켠 한은, 우회전은 언제?=한은은 최근 두번 연속 금리 인상 깜빡이를 켰다. 7월과 8월 총재 추천 몫인 이일형 금통위원의 소수의견을 통해서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금리인상의 불가피성을 여러 차례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한은 안팎에서는 소수의견이 나오면 금리변화의 신호로 여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소수의견은 한달 내지 두달 안에 다수의견으로 바뀐다. 7월 금통위에서 소수의견이 나왔을 때 시장이 8월 금통위 내지 10월 금통위에서 금리가 인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근거다. 8월에 금리를 올리지 못한 만큼 10월에는 올려야 “깜빡이 켜고 직진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셈이다.
◇성장률 내리고 금리인상?=하지만 한국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게 문제다. 한은은 우리 성장률이 여전히 잠재성장률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성장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9%로 한차례 하향했고, 10월 금통위에서 2.8%로 또 다시 하향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은은 1년에 4차례 경제전망을 수정하는 데 하필이면 올해 마지막 수정이 다음달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와 겹쳐 있다. 실제 우리 경제는 반도체와 석유화학 제품을 중심으로 한 수출을 제외하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9월에는 취업자 증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경제침체를 방기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성장률 전망치를 내리고 금리를 올리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어서 고민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시장 과잉이 저금리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은 그 자체로는 맞지만 금리인상의 이유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금리는 부동산 경기를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저금리는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는 것은 결과론일뿐”이라며 “오히려 저금리 탓이 아니라 전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 규제를 풀어준데다 최근 다른 투자처가 없기 때문에 부동산으로 돈이 몰렸다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라고 꼬집었다.
◇이낙연 총리의 돌출 발언과 ‘척 하면 척’의 악몽=이 총리가 국회에서 금리인상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금리인상’에 악재라는 게 한은 집행부의 분위기다. 금리인상 신호를 보내놓은 상황에서 이 총리가 ‘금리’를 언급하는 바람에 긁어부스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한 관계자는 “한은이 가장 민감해 하는 것이 ‘독립성’ 논란”이라며 “이 총리가 금리를 언급한 이후 처음 열리는 금통위(10월)에서 바로 금리를 올리면 ‘정부 압박에 굴복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으로서는 가장 떠올리기 싫은 악몽인 ‘척 하면 척’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척 하면 척’ 논란은 지난 2014년 9월21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호주를 방문한 이 총재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양자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금리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척하면 척 아니겠느냐”고 말해 정부의 금리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이 총재로서는 취임 이후 가장 떠올리기 싫은 순간이 최 부총리와의 만남인 셈이다.
◇미국과의 금리격차=한미 금리역전도 한은이 고려해야 할 주요 요소다. 현재 한미 금리역전폭은 0.5%포인트다. 문제는 한은이 손을 놓고 있을 경우 이 격차가 1.0%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자리가 0%대인 것과 1%대인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는게 한은 내부의 분위기다.
미 연준은 올해 3차례 FOMC회의(9월, 11월, 12월)를 남겨두고 있다. 이 가운데 금리인상이 유력한 FOMC회의는 9월과 12월 회의다. 한은으로서는 남은 10월과 11월 금통위 중 한번은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미 금리격차가 1%포인트 대로 벌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인상 시기 10월서 11월로 이동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감안했을때 10월보다는 11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10월에 올릴 경우 고용쇼크를 방기하고 정부 압박에 밀려 금리를 올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11월에 올릴 경우에는 깜빡이 켜고 우회전이 늦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한미 금리격차를 1%포인트 미만으로 유지하면서도 경제상황을 반영해 금리인상 시기를 최대한 늦추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한은 독립성 논란의 속박에서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한 시장 전문가는 “국내 경제 상황만 보면 금리를 동결해야 하지만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경제성장률 전망 하향의 불가피성, 고용쇼크, 한은 독립성 논란 등을 감안하면 11월에 올릴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