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왼쪽)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롯데 뉴욕팰리스 호텔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무역대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결과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한미 양국 통상장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결과문 서명으로 양국에 새로 적용될 무역 규정은 국회 비준만을 남겨뒀다. 개정안이 적용되면 미국 기업이나 투자자가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를 악용해 소송을 남발할 수 없게 된다. 다만 한국에서 생산하는 픽업트럭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자동차 관세 부과 등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김현종 “대미 통상환경 불확실성 해소가 가장 큰 성과”=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한미 FTA 개정협상 결과문서에 서명했다. 정부는 대미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해소를 개정협상의 가장 큰 성과로 들었다. 김 본부장은 뉴욕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 세계 주요국들이 미국과 치열하게 통상 분쟁, 통상 쓰나미에 휩싸인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먼저 타결되고 서명된 무역협정이 한미 FTA 개정협상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상대국을 상대로 통상 압박의 강도를 키우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멕시코가 지난달 타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의 경우 멕시코가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NAFTA의 남은 상대인 캐나다와의 협상에서도 미국은 캐나다를 아예 협정에서 제외할 수도 있다고 선언한 상태다. 미국은 유럽연합(EU)을 상대로도 양보를 강요하고 있고 일본 역시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여건에서 한국은 조기에 개정협상을 마무리했기 때문에 나름 선방했다는 게 정부의 평가다. 김 본부장은 “첫째(한미 FTA 협상)도 그랬고 두 번째(개정협상)도 마찬가지인데 한미 FTA를 깰 생각을 하고 협상에 임했다. 그랬더니 상대방이 캐나다와 멕시코와 달리 소규모로, 타결 가능한 패키지로 가자고 했다”며 “국익·국격·국력 증대 차원에서 크게 손해 보지 않고 레드라인을 다 지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브리핑에서 김 본부장은 11년 전 한미 FTA 타결 서명식 때 입었던 양복과 넥타이를 그대로 입고 나오기도 했다.
◇새 규정 적용되면 론스타의 ‘한국 소송’ 막혀=이번 개정협상에서 한국이 얻어 낸 성과 중 하나는 ISDS를 악용한 소송을 제한한 점이다. ISDS는 상대국에 투자한 투자자가 상대국 정부 정책으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인데 이를 악용해 거액의 국가 배상을 노린 소송이 빈발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벨기에 투자보호협정을 근거로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과 과세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개정안이 적용되면 론스타가 한미 FTA를 근거로 또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된다. 또 ‘정부 정책은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근거로 외국 기업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해당 정부 정책이 환경보호, 중소기업 보호 등 공공복지를 위한 것인지를 고려해 차별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ISDS 개정과 함께 한국산 철강 등에 무차별적으로 부과되던 덤핑·상계관세율 등 미국의 수입규제에 대한 투명성도 확보됐다. 협정문에는 덤핑, 상계관세율 계산방식을 공개하고 관세 부과를 위한 실사에 나설 경우 현지실사 개최 일자를 사전 통지하도록 했다.
◇픽업 트럭 수출길 사실상 막혀…232조 따른 車 관세 변수 여전=반대로 우리가 미국에 내준 것도 있다. 특히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25% 관세 철폐시기를 오는 2021년에서 2041년으로 20년 연장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한국산 픽업트럭의 미국 시장 진출이 막혔다고 보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개정 중인 ‘글로벌 혁신 신약 약가 우대 제도’ 역시 한미 FTA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하는 데 동의했다. 국산 약의 대미 수출이 거의 없고 신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국내 제약업계에는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지만 외국 제약사의 신약 가격이 올라가면서 전체 의료비 증가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한미 FTA 개정으로 미국의 통상압박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것은 아니다. 한미 FTA 개정안에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면제’는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우려로 문재인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에서 한국 자동차는 면제해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안전장치는 없다. 한 통상 전문가는 “한미 FTA 개정과 무관하게 미국이 232조 자동차 조치를 할 위험은 여전하다”고 내다봤다.
/세종=강광우기자 뉴욕=이태규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