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들이 비관적인 반도체 업황 전망을 내비치고 있다. 그동안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증권사가 잇따라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에 대한 투자의견을 끌어내리면서 투자자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국내에서도 반도체 고점론에 가세하는 모습이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업황이 견조하다는 전망을 고수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006800)는 27일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6만4,000원에서 6만3,000원으로 소폭 하향 조정했다. 삼성전자의 3·4분기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여전하다. 하지만 미래에셋대우는 삼성전자의 3·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17조6,100억원에서 17조1,700억원으로 낮춰 잡았다. 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원재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반도체 성수기 효과에도 불구하고 가격 상승이 둔화되고 있다”며 “4·4분기 D램 가격(4Gb·8Gb 기준)은 2년 만에 하락 반전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낸드 역시 평균판매단가(ASP)가 3·4분기 0.4달러에서 연말에는 0.3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연구원은 “3·4분기 전체 영업이익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79.2%라는 점을 고려하면 투자심리에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장중 1% 넘게 떨어지다 막판에 저가 매수를 노린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면서 0.21% 오른 4만7,500원에 장을 마쳤다. SK하이닉스는 2.22% 하락했다.
그동안 반도체주의 발목을 잡은 것은 주로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였다. 지난달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업종에 대한 투자 전망을 ‘주의’ 단계로 하향 조정한 후 이달 들어서는 반도체 수요와 관련해 비관적인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골드만삭스도 지난 12일 SK하이닉스에 대해 ‘매수’에서 ‘중립’으로 투자의견을 낮췄고 삼성전자는 추천주 명단에서 아예 제외했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D램·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고점을 넘어선데다 가격 하락을 메울 만한 수요 증가도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국내 증권사들은 반도체 업황의 ‘슈퍼 사이클’은 지났어도 서버용 반도체 등의 새로운 수요처가 늘면서 반도체주의 성장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외국계·국내 증권사들의 대립 양상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지난달 말에는 신한금융투자가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6만4,000원에서 6만1,000원으로 내렸다. “실적 추정치에는 변화가 없지만 D램 가격 하락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반영했다”는 게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의 설명이다. 미래에셋대우와 신한금융투자가 올 들어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을 근거로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한 다른 증권사들과 달리 D램 가격 등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는 점에 증권가는 예의주시한다.
증권가 전체의 삼성전자 실적 추정치도 둔화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5월 증권사들의 3·4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 추정치는 17조6,225억원이었지만 이달 들어서는 17조2,065억원까지 줄었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여전히 “업황이 견조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낸드는 공급이 늘어도 수요가 충분한 수준이며 D램은 서버용 등 장기적인 수요 성장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저가 매수를 권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박원재 연구원은 삼성전자에 대해 “현재 배당수익률이 3%를 넘고 추가 배당 성향도 가능하다”며 “트리플 카메라 적용, 폴더블 스마트폰 출시, 5세대(5G) 스마트폰 교체 수요 등 내년 스마트폰 시장도 기대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또 SK하이닉스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증권가의 3·4분기 SK하이닉스 영업이익 추정치는 5조4,629억원에서 현재 6조3,036억원으로 오히려 상향 조정됐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