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3차 유엔총회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이 롯데팰리스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뉴욕타임스(NYT)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욕=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시간싸움(time game)을 하지 않겠다”며 지난 6월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끊임없이 나온 비핵화 시간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물리적인 ‘시간제한’ 이라는 울타리를 걷어내고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제대로 된 비핵화 성적표를 받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간에 쫓겨 단기 목표에 집착할 경우 북한과의 협상에서 상당 부분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 국무부가 ‘2021년 1월’로 명시한 비핵화 시간표를 며칠 만에 뒤집은 것은 물론 ‘속도전’에 나서온 우리 정부의 입장과도 결을 달리하는 것으로, 미 행정부 내부의 혼선과 한국 정부와의 엇박자를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비핵화를 주장한 북한을 설득해 1년 내 비핵화 입장을 강조해왔으며,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협상에 속도를 내기 위해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측이 영변 핵시설 폐기 등 비핵화 의지를 보여줬으니 미국도 그에 맞는 체제안전보장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해온 만큼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미 입장에 혼란이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2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협상을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시간싸움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다음달 초 네 번째 방북을 앞둔 폼페이오 장관도 “물건을 확인도 않고 사는(buy a pig in a poke) 일은 없을 것”이라며 시간이라는 한계에 갇혀 진전된 사안 없이 북한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을 확인했다.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비핵화 시간표를 둘러싼 미국 정부의 입장은 ‘오락가락’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은 6월 정상회담 이후 후속협상을 거치는 과정에서 속전속결식 일괄타결론을 앞세워왔다. 폼페이오 장관은 6월 한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가 끝나기 전에 북한의 주요 비핵화 조치를 완료하기 바란다”며 사실상 2020년 말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처음 제시했다. 이후 그는 “구체적인 비핵화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았다”며 한 발 뺐으나 이달 19일에는 다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전까지 신속한 비핵화가 이뤄질 것임을 확인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폼페이오 장관의 ‘빈손 방북’ 논란으로 미 정치권에서 비핵화 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기 시작한 이후로 ‘속도조절론’을 꺼내 들며 비핵화 협상에 시간제한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다만 이번에 “시간싸움을 않겠다”고 못 박으며 북한과의 협상에서 장기전 태세를 확고히 함에 따라 북한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을 연내에 교환하려는 우리 정부는 앞으로 셈법이 복잡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내에 북미가 동시에 성과물을 교환하는 북미 빅딜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한에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것 외에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고 말하며 비핵화의 철저한 검증을 우선시했다.
또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북미 간 빅딜을 향한 접점 찾기와 이와 맞물린 2차 북미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본격적인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고조되고 있지만 한편으로 미 행정부에서 나오는 엇갈린 메시지가 남북미 방향성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비핵화 협상이 지루한 장기전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건은 폼페이오 장관이 4차 방북에서 ‘빅딜’을 위한 구체적인 교집합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을지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방북에서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입구를 순조롭게 열 경우 2차 북미정상회담이 조기에 진행되고 핵 담판의 전망도 그만큼 밝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