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로비 한켠에는 철창우리 속에 갇힌 개 동상을 비롯해 형형색색의 개 동상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른바 ‘꽃개’들이다. 표창원·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 등이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과 공동으로 개최한 ‘2018 황금개의 해 꽃개 전시회’ 개막식 현장이다.
3명의 의원은 각각 식용 목적의 개 사육·도살을 실효적으로 규제·금지하기 위해 발의된 축산법·동물보호법·폐기물관리법 일부개정안 등 개 식용 종식을 위한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개를 가축에서 삭제하는 ‘축산법 일부개정법률안’ △동물의 임의 도살을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음식물 폐기물을 동물의 먹이로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폐기물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표 의원은 “제 작은 노력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서 실질적 변화 이끌어내는 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정애 의원은 “우리가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마치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과 같아졌다”면서 “옛날에 존재했던 안 좋은 관습들을 드디어 마감할 때가 도래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돈 의원은 “세상의 역사를 보면, 축적된 에너지가 잠재돼 있다가 한꺼번에 변화가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3개 법안 중 2개 정도는 꼭 통과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자신했다.
이들은 이날 꽃개 ‘황금이’를 철창우리로부터 해방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국회를 찾은 동물권단체 측과 육견협회 측은 국회의원들의 법안 개정안 발의와 관련해 의원실을 찾아가며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공동대표는 “개들이 음식물 쓰레기로 배를 채우고 항생제로 연명하는 현실에 개식용 철폐는 더이상 취향이 아니라 당위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육견협회 측은 “유예기간 없이 개 도살업자와 개고기 식당주인을 범법자로 만드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이들은 사회 인식의 변화 흐름에는 동의하지만 기존에 이어져 온 문화가 갑자기 위법으로 바뀌면 생존권을 위협받는다고 주장했다.
개 식용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대법원 판결에서도 나타난다. 이달 14일, 대법원은 전살법(전기로 감전시켜 도살하는 방법)을 ‘동물권’의 관점에서 학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고등법원이 무죄 판결한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감전 방식으로 개를 도살해 동물 학대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A씨에 대해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A씨는 지난 2011~2016년 본인이 운영하는 개농장의 도축시설에서 동물을 학대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개를 묶어놓은 상태에서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개의 주둥이에 대 감전시키는 방법으로 도축해왔다. 검찰은 “누구든지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면 안 된다”며 동물 학대 혐의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동물보호법 등 법령을 종합해봤을 때 전살법을 이용해 동물을 도살한 것은 잔인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무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전살법이 잔인한 방법인지는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반려동물로 키우며 개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개에 대한 사회 인식이 바뀐 점을 법 해석에 반영한 셈이다. 이어 “전류의 크기와 감전 후 개가 기절하거나 죽는 데 소요되는 시간, 도살 과정에서 동물이 겪는 고통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어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하급심이 사람의 관점에서 행위의 잔인함을 평가했다면 대법원은 동물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관행적으로 행해져 온 전살법이 위법으로 확정되면 사실상 개 도살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개를 식용하기 어려워진다. 동물권 단체들은 성명서를 내고 “대법원의 판결은 동물 학대에 대한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동안의 ‘개 식용’을 끝내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만들어낸 소중한 결과”라고 밝혔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