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황호선 해양진흥공사 사장 "중소선사 지원규모 현대상선 수준 만큼 늘릴것"

글로벌 해운동맹 동향 등 참고해 구체적 규모·방식 결정
국내 기업들 국적선사 이용할 수 있도록 직접 영업 계획
해운원가 경쟁력 회복위해 동남아 항만 터미널 투자 구상

황호선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송은석기자

2016년 8월31일은 우리 해운산업에 악몽과도 같은 날이다. 국내 최대, 세계 7위 국적 원양선사였던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곧바로 물류대란이 현실화했다. 당시 한진해운 선박들은 압류되고 입항이 거부되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교역품을 실은 한진해운 선박들은 항구로 들어가지 못하고 공해상에서 대기해야 했다. 지난해 2월 최종 파산한 한진해운의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외 선주들은 물론 국내 선주들까지 한국 해운업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한진해운 파산 전 105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에 달했던 국적선사 컨테이너 적재능력(선복량)은 50만TEU 밑으로 쪼그라들었다. 170여개나 됐던 해운회사 중 100여개가 이미 퇴출됐다. 이 같은 사태의 원인은 1차적으로 한진해운의 부실경영이지만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세계 6위 교역국가인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9%를 담당하는 해운산업에서 국적 원양선사는 필수적인데 금융권의 논리에 밀려 파산을 방치해 화를 키웠기 때문이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해운업을 되살리기 위한 ‘해운재건5개년계획’이 마련됐다. 이 계획에 따라 국적선사들의 선박 도입과 유동성 지원, 선박 투자까지 국내 해운산업에 대한 지원을 책임지는 한국해양진흥공사가 7월 등판했다. 해운산업의 구원투수가 등장한 셈이다. 3개월여간 공사 출범 준비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미뤘던 황호선 사장을 20일 부산 해운대구 한국해양진흥공사 본사에서 어렵게 만났다. 황 사장은 해운업 재건에 대한 구상부터 지원계획까지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대담=김능현차장 nhkimchn@sedaily.com

황호선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송은석기자

황 사장은 중소선사에 대한 지원을 공사의 우선과제로 제시했다. “현대상선 지원 규모에 걸맞게 중소선사의 지원 규모를 키울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해운업 지원계획이 한진해운 사태 이후 유일하게 남은 국적 원양선사인 현대상선에 집중돼 ‘대기업 밀어주기’라는 부정적 여론이 인 것을 돌파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아직 중소선사들의 선박 발주 수요 조사가 끝나지 않아 이른 감은 있지만 장기적으로 현대상선 지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으로 중소선사들을 지원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황 사장은 “한 곳(현대상선)에 너무 집중돼 중소선사에 대한 지원이 소홀해지는 것은 저 역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아직 현대상선에 대한 지원 규모도 확정되지 않은데다 중소선사들의 선박 발주 수요도 모두 조사된 게 아니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현대상선 수준으로 중소선사에 대한 지원 규모를 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와 업계 안팎에서는 현대상선 지원 규모를 약 5조원으로 보고 있다.

공사가 중소선사를 지원하는 수단은 크게 세 가지다. 당장 고비용 구조에 허덕이는 선사의 경우 공사가 선박을 매입한 뒤 이를 선사에 빌려주는 형태인 세일앤드리스백(S&LB)를 통해 우선 지원한다. 이미 6개 중소선사에 500억원 규모의 S&LB 사업이 확정된 상태다. 새로운 선박을 발주하려는 중소선사에는 부족한 신용을 보강하기 위해 보증을 지원한다. 현재 4개 선사의 신조·중고선을 대상으로 1,100억원 규모의 선·후순위 보증이 진행되고 있다. 보증사업은 공사 자체의 신용등급 부여로 지원 대상 선사를 기존보다 확대할 방침이다. 마지막으로는 해운사들의 원가구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컨테이너 등 부대 자산 대여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황 사장은 “해운사들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권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이 때문에 해운사의 금융지원이 쉽지 않았다”며 “높은 금융부담을 지고 급전에 가까운 자금으로 배를 발주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중소선사들의 원가 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있어 이를 뒷받침할 수단들을 내놓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건실한 영업망을 갖췄지만 규모가 작아 금융지원 혜택을 받지 못한 중소선사의 금융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진해운의 뒤를 이어 국내 최대 원양선사가 된 현대상선에 대한 지원 역시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게 황 사장의 철학이다. 현재 현대상선이 보유한 컨테이너 선복량은 43만TEU로 머스크·MSC 등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들과 경쟁하기에는 턱없이 규모가 작다. 이들과 경쟁하려면 최소 100만TEU 수준의 선복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대상선은 이미 공사의 지원을 전제로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건조 계약을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와 체결했다. 조선 3사가 건조한 선박을 오는 2021년에 인도받으면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82만TEU로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공사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황 사장은 “국내 해운업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내 선주들의 원활한 교역활동을 지원하는 데는 현대상선의 점유율과 선복량 회복이 필수적”이라며 “국적 원양선사는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원 규모가 5조원 안팎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산업은행이 진행 중인 현대상선에 대한 실사가 종료되고 향후 컨테이너 운임과 글로벌 해운동맹 등의 동향을 참고해 관계장관회의에서 구체적인 지원 규모와 방식이 결정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5조원으로 현대상선을 살려내고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도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상선 지원 규모가 5조원에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암시한 것이다.


황호선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송은석기자

선박을 확보하더라도 실어나를 물량이 부족하면 결국 돈 낭비에 불과하다. 물동량과 국적선사의 적취율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황 사장은 “최근 한 행사에서 국내 타이어 업계 회장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손실이 상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내 화주들 역시 한국 해운업에 대한 기대가 많이 떨어졌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낮은 비용으로 운송할 수 있도록 선대를 갖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고, 선주협회와 무역협회·대한상공회의소 등과 협조해 국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국적선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직접 영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황 사장은 한진해운 파산 과정에서 드러난 금융권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황 사장은 “우리 금융업은 주택담보대출 등 비생산적인 투기자본을 만들어 올 상반기에만도 9조원 정도의 이익을 남겼다”며 “공사가 선박금융·조선업에 대한 간접금융의 물꼬를 터 이런 비생산적인 금융의 순환과정을 개선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사장은 현대상선과 중소선사들의 원가 경쟁력 회복을 위해 부산신항 터미널은 물론 베트남·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 항만 터미널에 투자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주요 글로벌터미널운영사(GTO)는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 주요 항만을 선점하고 있고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신항 역시 5개 터미널 중 4곳을 해외 GTO가 운영하는 상황이다. 황 사장은 “선사 입장에서 볼 때 경쟁력 있는 선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항만 터미널을 이용해 원가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며 “부산신항의 경우는 공사가 지분 40%를 확보하고 현대상선이 10%를 확보하면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아시아 지역을 운항하는 중소선사들의 원가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베트남·말레이시아 등의 항만 개발, 지분 투자 등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해운업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침체에 빠진 조선업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기술경쟁력을 높여나가는 것도 황 사장의 목표다. 그는 “드라이벌크 선박 등 노동집약적 선박 건조는 이제 중국 조선업에 밀려 우리가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면서 “친환경·고효율·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의 발주물량을 늘리면 조선업 구조조정에도 공사가 간접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리=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황호선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송은석기자

약력

△1952년 부산 △1971년 경남고 △1980년 서울대 철학과 △1996년 미시간대 경제학박사 △1997년 아주대 세계지역연구센터 연구위원 △1999~2017년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2003~2004년 대통령자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 △2003~2007년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 △2003~2006년 사단법인 시민사회연구원 초대 원장 △2004~2005년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부산진해특별위원회 위원 △2005~2009년 경제자유구역위원회 민간위원 △2005~2007년 전국지역현신연구회 회장 △2006~2008년 부산 경제정의실천연합회 공동대표 △2009~2013년 사단법인 시민사회연구원 이사장 △2018년 7월~ 초대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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