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전 세계 제약산업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결정이 내려졌다. 세계 최초로 유전자 조작된 환자 자신의 면역세포를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치료제로 허가한 것이다. 세계적인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킴리아라는 이름으로 FDA의 허가를 받은 이 약은 키메라항원수용체-T세포(CAR-T)라는 세포유전자 치료제로 유도장치를 탑재한 미사일처럼 매우 효과적으로 암을 찾아 죽일 수 있는 혁신적인 의약품이다. 이어 10월에는 길리어드에서 두 번째 CAR-T를 림프종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이들 두 회사는 약 5년 동안 임상시험을 해 품목허가를 받았으니 통상적인 항암제 개발 기간에 비해 매우 빠르게 품목허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노바티스는 어떻게 CAR-T를 개발하게 됐을까. 지난 201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과대학의 칼 준 교수는 급성림프구성백혈병에 걸린 여섯 살 소녀 에밀리의 혈액에서 T세포를 골라내 유전자 조작을 한 다음 다시 에밀리의 혈관에 주사했다. 기존에 항암 치료를 16개월 동안 반복해도 계속 재발하던 에밀리의 악성 백혈병은 이 치료 후 기적적으로 낫기 시작했고 그는 결국 완치 판정을 받고 현재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이러한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는 세포 치료제 또는 유전자 치료제 같은 첨단기술을 이용한 의약품 개발에 기존의 제약회사는 계속 관망하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아직 효력이 증명되지 않은 최첨단기술이라 의약품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를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지만 에밀리에 대한 시험적 치료가 성공적인 결과를 보고하기 무섭게 노바티스는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기술을 사들여 개발을 시작한다. 간염 치료제 같은 화학의약품을 개발하던 길리어드는 비슷한 CAR-T 치료제를 개발하던 카이트파마를 무려 13조원에 인수해 막바지 임상을 끝내고 품목허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정은 어떤지 살펴보자. 사실 세계 최초로 허가받은 세포 치료제도 우리나라에서 먼저 나왔고 이러한 첨단 바이오의약품의 경우 우리의 기술 수준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비록 다소 늦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CAR-T 치료제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산업적으로 유용한 CAR-NK(T세포 대신 NK세포를 이용)는 세계 선두권에서 개발하고 있다. 정부 각 부처에서도 막대한 연구비를 이러한 첨단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투입하고 있어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경쟁력 있는 CAR-T 또는 CAR-NK 치료제가 개발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약을 개발하는 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임상연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험실연구와 달리 충분히 여러 번 평가해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모든 연구가 그렇듯이 매 임상이 성공적인 결과만 보여줄 수는 없다. 새로운 약물일수록 어떤 환자에게 어떻게 써야 좋을지 투약 방법 및 용량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므로 약을 개발하는 연구자가 점쟁이가 아닌 이상 결국 실패를 허용하는 다수의 탐색적인 임상연구가 필요하다. 아무리 외국의 선행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 손안에 든 약물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직접 얻어야만 약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400개가 넘는 제약회사가 있다고 하지만 모든 제약회사와 바이오기업을 다 합쳐봐야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제약회사 하나만도 못한 규모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업에서 첨단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필요한 충분한 임상시험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기업과 의료계, 정부와 투자자 모두 애정 어린 지원과 기대에 찬 인내를 함께할 때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혁신 의약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노바티스의 CAR-T가 개발되기 전 약 30년 동안 무수한 실패를 거듭한 T세포 치료가 있었다는 점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