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병 도진 국회 "北 양묘장 찾은 총수들, 증인 나와라"

‘일단 부르고 보자’... 도 넘은 국감 기업인 호출
농해수위, 이재용·최태원·구광모 등 놓고 협상
국토위, 리콜 관련해 정몽구 회장 증인채택 거론

국회가 국정감사에 기업인을 무분별하게 부르는 것을 막고자 지난해 ‘국감 증인 신청 실명제’를 도입했지만 ‘일단 부르고 보자’ 식의 묻지마 증인채택 시도가 여전히 빈발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단으로 북한 양묘장을 찾았다는 이유로 대기업 총수를 증언대에 세우려는가 하면 리콜(결함시정) 등 실무 현안과 관련해서도 일단 회장을 호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부 상임위원회에서는 총수를 부르려다 비판을 받자 “그럼 대표를 부르자”고 의견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1일 국회 각 상임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을 국감 증인석에 세우기 위해 여야 간 협상을 벌이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이들에게 평양 정상회담 때 북한에 가서 어떤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는지 묻겠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총수들이 지난달 19일 북한 양묘장을 방문했으니 그곳에서 산림 등 분야에 대한 남북 경제협력 논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게 야당 의원들의 판단이다. 이에 대해 여당 의원들은 증인 채택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농해수위 여당 간사인 박완주 의원은 총수 부르기에 대해 “실무도 잘 알지 못하는 대기업 총수를 불러 망신주기 하자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토교통위도 농해수위와 마찬가지로 증인 리스트를 최종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증인 채택 여부다. 국토위는 리콜과 관련해 정 회장을 비롯한 이원희 현대차 사장 등의 증인 채택을 거론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BMW 화재 사태’로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 ‘기내식 대란’으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증인 채택도 논의 중이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조세 회피’를 이유로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 리차드 윤 애플코리아 대표, 조용범 페이스북코리아 대표 등을 부를 것으로 관측된다.

정무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우 국감 증인 채택을 완료했다. 정무위는 지난달 28일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 윤호영 카카오뱅크 은행장,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 등 기업인 39명을, 환노위는 같은 달 20일 이윤규 애경산업 대표, 박동석 옥시레킷벤키저 대표, 박동욱 현대건설 사장 등을 주요 증인으로 채택했다.

‘기업인 길들이기’에 볼멘소리는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한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는 “국회는 지난해 기업인을 마구잡이로 불러들이는 행태를 멈추기 위해 스스로 국감 증인 신청 실명제를 도입했다”며 “하지만 누가 불렀는지 공개도 하지 않는 실명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꼬집었다. /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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