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조금으로 사실상 연명하다시피 하고 있는 우리의 농촌 현실과 달리 일본은 일찌감치 민간기업의 농업 진출을 유도하면서 자력 생존의 길을 터주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일본의 대형 편의점 업체 로손(LAWSON)이다. 우리나라라면 ‘굴지 대기업의 농업 진출’ ‘현대판 소작농화(化)’라는 프레임에 갇혀 현실화가 어려울 법도 하지만 일본은 오히려 농업과 성장동력을 모색하려는 대기업이 협업하면서 윈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로손은 지난 2015년 일본 최대 쌀 생산지역인 니가타현에 농업생산법인인 ‘로손 팜 니가타’를 설립했다. 전국 23개 지역에서 운영하는 농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조달하던 데서 나아가 일본 최대 쌀 생산지에 직접 진출해 아예 쌀농사를 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니가타는 일본 전국에서 연간 생산되는 쌀 789만톤(2015년 기준) 가운데 8%가량인 61만톤을 감당하고 있다. ‘고시히카리’ 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로손은 자체 생산한 쌀을 자신들의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도시락 등의 상품에 사용하며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로손이 니가타에 쌀 생산법인을 설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농지 임대와 매매 허가권을 기초단체장에게 부여하는 등 낮아진 기업 진입 장벽이 있다. 일본 정부는 2014년 국가전략특구 가운데 농업개혁 거점으로 니가타 등 3대 쌀 생산지역(니가타·야부시·센토쿠)을 지정했고 농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유발하기 위해 농지 매매 허가권을 기초단체장에게 부여했다.
일본 종합슈퍼 체인업체인 이온(AEON)도 자회사인 이온애그리창조를 통해 농업에 진출, 전국에서 쌀과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종합가스업체인 에어워터는 2011년부터 토마토 재배를 시작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자신들이 보유한 노하우를 활용한 난방비용 절감 등의 재배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식품 관련 기업과 건설업·제조업·도소매업 등 다양한 기업이 생산자·농협 등과 연대해 농업 경영에 참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금융업의 농업 진출 사례도 있다. 일본 3대 메가뱅크 중 하나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2016년 아키타현 생협과 1억6,000만엔을 공동출자해 농업회사를 출범시켰다. 5년 내 흑자 달성과 10년 내 1,000㏊ 농지 확보가 당시 목표였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사업 초기에는 추수·탈곡·정미와 같은 쌀 가공 업무에 진출한 뒤 추후 직접 쌀 재배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의 김병률 박사는 “영세한 농민들이 하는 분야까지 대기업이 진출하는 데는 반대하지만 기본적으로 ‘농업은 농민만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면서 “종자 개발과 첨단재료 개발 등의 분야에서는 기업들의 진출을 장려해야 농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확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첨단화가 어려운 농업 생산 분야에 기업의 진입을 일부 허용해 생산성 향상과 품종 개량 등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