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투자·일자리 강요 말고 규제부터 제대로 풀어라

정부가 주요 그룹사를 대상으로 투자와 고용 이행계획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8대 대기업 관계자와 간담회를 열어 기업별 투자·고용방안을 논의하면서 개별 프로젝트의 내용과 애로사항 등을 지난달 17일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당국은 이행계획이 아니라 현장의 애로사항을 폭넓게 듣기 위한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대기업들이 안게 될 여러 부담감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대기업들은 최근 어려운 경제를 살리겠다며 향후 5년에 걸친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확대방안을 잇따라 내놓았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중장기 경영전략이었고 정부도 이를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투자계획을 발표한 대기업 관계자들을 한자리에 소집해 투자 이행사항을 협의했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투자활동은 기업의 고유권한으로 시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칫 무리한 경영간섭으로 비칠 수 있다. 일각에서 정부가 공공 부문의 일자리 창출이 벽에 부딪히자 결국 민간 부문의 투자를 최대한 이끌어내 생색을 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와중에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경기하강 국면에 진입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설비투자는 1.4%나 줄어들면서 6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다. 대표적 경기선행지표인 설비투자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장기간 감소세를 면치 못하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의 경기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경기동행·선행지수가 3~5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금융위기 수준으로 추락한 것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기업에 투자를 강요한다고 해서 위축된 투자가 되살아날 리는 없다.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오히려 감세 혜택을 늘리고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 투자를 늘리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사회 전반에 친기업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니 저절로 경기가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다음달 취업자 수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며 부진한 고용실적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경제수장의 뒤늦은 반성문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처럼 친기업 정책 기조를 앞세워 과감히 규제를 풀고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먹구름이 드리워진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 기조 전환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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