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악화에 금리 상승까지 겹치면서 600조원에 달하는 자영업자의 대출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의 경우 제2금융권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고 있거나 여러 군데서 빚을 낸 다중채무자가 대다수여서 내수 회복이 지체될 경우 다중채무가 악성채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우리 경제에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여파와 미투 운동, 주 52시간제 도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업 유지를 위해 대출에 기대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과다 채무 보유자, 음식·숙박·부동산업 등의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채무상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영업 부진의 고비를 넘기 위해 은행에서 운전자금을 빌리려는 수요가 상당하다”며 “자영업 대출이 없다면 줄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590조7,000억원으로 600조원에 육박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연말 대비 41조원이나 늘어날 정도로 증가세가 가파르다. 대출 증가는 도·소매, 숙박, 음식업 대출이 주도했다. 2·4분기에만 이 업종의 대출은 1·4분기보다 6조원 늘어 증가폭으로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자영업자 1인당 평균 대출 규모는 2014년 말 3억원에서 올해 2·4분기 말 3억5,000만원으로 확대됐다. 금융당국이 3월 자영업자 대출을 관리하기 위해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대출 증가 억제 효과는 크지 않았다.
문제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1금융권과 2금융권 등 여러 업권에서 대출을 중복 보유하고 급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고금리 대출을 쓰는 경우가 많아 경기변동과 금리 인상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전체 자영업 대출의 31%(183조원)가 저축은행 등 고금리인 비은행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자영업자는 기본적으로 다중채무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금리 압박이 본격화되면 연체율이 오르게 될 것”이라며 “자영업자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운전자금 등으로 쓰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변동금리 부채를 진 가구의 연간 이자지급액은 평균 94만원 증가하는데 자영업자의 증가폭은 122만원 늘어나 부담이 더 크다. 미국 금리 인상의 여파로 한국은행의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어서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담이 가중되고 소비침체로 영업 부진이 날로 악화되는 상황이어서 상환능력은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6월 말 기준 국내 은행에서 1개월 이상 원리금을 연체한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29%로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일반 가계대출(0.25%)보다 소폭 높았으나 중소법인대출 연체율(0.64%)을 밑돌았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연체율이 낮고 대출금액 비중이 높은 부동산·임대업을 제외하면 현실은 심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음식점이나 숙박업을 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대출 부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착시라는 얘기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는 “연체율은 후행 수치여서 실제로는 2금융권을 중심으로 연체율 상승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분석하며 “자영업자의 경우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은 그들 보고 길거리에 나앉으라는 뜻이어서 대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렇다고 지원만 하면 자영업자 부실이 만성질환이 될 테니 우선은 복지정책이라는 응급처치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시중은행들도 숙박업·부동산임대업·음식점업 등의 자영업을 내부 관리업종으로 지정해 여신심사를 강화하며 관리하고 있다. 다만 대출이 거절된 소상공인들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이나 고금리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게 돼 무작정 축소하기도 힘든 현실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자영업자 대출을 줄이자니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고금리로 가게 돼 적정 수준을 찾는 것이 고민”이라며 “대출 억제만이 해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정원·손구민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