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임금격차 해소, 답을 찾아서]獨, 복지혜택 차이까지 투명 공개...연봉협상 근거로 활용

2회. 임금공개로 성 평등 나서는 EU국가들
스위스 임금공개시스템 구축
50인 이상 기업체 연봉 등록
佛은 임금차별 감시SW 도입
英도 '임금격차보고법' 시행
女 경제활동에 활력 불어넣어

스위스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인 임금 공개 홈페이지 ‘Zeig deinen Lohn(당신의 임금을 공개해주세요·Show your Salary)’. 이용자들은 이름·직업·연봉 등을 적은 자신의 사진을 자율적으로 홈페이지에 등록해 다른 사람들과 직종별 임금 정보를 공유한다. /Zeig deinen Lohn 홈페이지 캡처

경제 강국인 독일은 일찍이 직장 내 성 평등과 임금차별 금지를 위해 노력해온 국가다. 지난 1970년대 들어 여성이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계약을 법적으로 금지했고 1977년 여성이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과정도 폐지되면서 일하는 여성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2006년 독일 정부는 같은 일을 하는 남녀 근로자에 대해 임금차별을 금지하는 ‘임금평등법’을 시행했다. 이는 동일 근무를 하는 근로자가 성별 등의 이유로 동료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을 경우 회사를 대상으로 법적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한 제도다.

하지만 임금평등법 시행에도 독일의 성별 임금격차 수준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회사 내에 임금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이를 증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남녀 임금격차는 21%로, 유럽연합(EU) 회원국의 평균치인 16%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직군에서 같은 일을 하는 남성과 여성 근로자의 임금격차도 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디트 뢰더 독일 중소기업협회 대표는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저임금 업종, 파트타임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중이 남성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라며 “모든 성 차별 요소가 해결되면 남녀의 임금격차는 2%로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독일 정부는 지난해 7월 임금평등법에서 한 단계 발전된 ‘임금공개법’을 시행했다. 200인 이상 기업체의 고용주는 직원이 요구할 경우 해당 직원에게 동료의 임금자료를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공개해야 하는 제도다. 자료에는 기본급 외에 성과급, 차량 제공 여부 등 복지 혜택과 관련된 정보도 포함된다. 동일 노동에 대한 임금에는 성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동일 노동·동일 임금의 원칙하에 여성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에서 제정됐지만 남녀 상관없이 전 직원의 정보청구권을 보장한다. 당시 법안 도입을 이끌었던 마누엘라 슈베지히 독일 여성가족부 장관은 “동일 직무나 직급 내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여성들이 이 법을 통해 파악한 남성 동료들의 임금자료를 연봉 인상 협상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임금공개법은 독일 내 남녀 임금격차를 크게 줄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금공개법 시행 1년이 지난 현재 독일 노동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1년 만에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렵지만 법의 취지와 맞게 현장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헨리케 폰 플라텐 독일 공정임금연구소 대표는 “여러 설문조사를 통한 추정치를 살펴보면 임금격차가 줄어드는 속도는 느린 편이지만 방향성은 맞게 흘러가고 있다”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임금격차를 해소하기를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해소할 수 있겠지만 여러 이익단체의 이해관계도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뢰더 대표 역시 “임금공개법의 지속 가능성과 함께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정책도 뒷받침돼야 할 때”라며 다방면의 정책 지원이 이어져 사회 전반적으로 성별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남녀 임금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임금공개법을 적극 도입한 국가는 독일만이 아니다. 스위스 정부는 2011년 온라인 임금공개 시스템인 ‘로깁(LOGIB)’을 도입해 50인 이상 기업체의 고용주에게 직원 연봉을 등록하게 했다. 이 시스템을 통해 등록 기업의 절반이 기업 내 남녀 임금차별을 발견했고 자체적으로 차별 해소 방안을 강구하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영국에서는 지난해부터 ‘기업 성별 임금격차보고법’이 시행됨에 따라 250인 이상 근무하는 기업은 지정된 날짜에 남녀 근로자에게 지급한 임금과 성과급의 차이를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프랑스 또한 오는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기업에 임금차별을 감시하는 특별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성별 임금차별 9%를 완벽하게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직장 내 성 평등은 여성들의 경제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어 국가의 생산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에라 코란자 프랑스 우먼스포럼 총괄매니저는 “여성 근로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남성과 대립각을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근로자로서 국가의 경제력 창출에 가담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여성의 경제활동이 최대로 활성화돼 2025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2억4,000만개의 직업 고용이 이뤄진다면 270조달러의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를린·파리=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취재지원=한국언론진흥재단

‘Zeig deinen Lohn’ 로고. /Zeig deinen Loh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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