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는 세수 풍년인데 국민은 적금 깨는 현실

예금·적금을 깨는 국민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간 시중은행에서 개인과 개인사업자 명의의 정기예금·적금 중도해지 금액은 52조2,472억원에 달했다. 건수는 725만4,622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에 비해 건수는 32%, 금액도 21%나 늘었다. 이전 4년간의 연간 해지가 500만건 내외, 36조~43조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급증한 셈이다.

가계의 주머니가 얇아지면 오래 내야 하고 혜택은 바로 손에 잡히지 않는 보험을 먼저 정리하고 예금과 적금은 마지막에 처리하는 게 보통이다.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예적금 해지가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가 좋지 않아 국민들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뜻이다. 이렇게 가계의 살림살이는 어려워지는데 정부 세수는 호황이다. 올 들어 7월까지 걷힌 세금은 지난해 동기보다 21조5,000억원이나 많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세수는 당초 정부 예상치인 268조원을 훌쩍 뛰어넘어 300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유례가 드문 세수 풍년이다. 가계 소비 등의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져 세수 증대로 이어졌다면 나쁠 것이 없다. 하지만 가계가 적금을 깰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설비투자가 6개월째 마이너스인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게 분명하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탄탄해져서 세수가 늘어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가계·기업 등 납세자의 부담을 덜어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기업과 고소득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을 궁리만 하고 있으니 우려스럽다. 법인세의 경우 최근 수년간 미국·일본 등 주요국들은 모두 내리는 추세인데 한국만 역주행이다. 그 결과 미국과 일본은 성장률이 오르고 일자리가 넘쳐나는 반면 우리는 성장률 하락에 고용참사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 등에서 보듯 감세는 기업 투자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늘리고 가계소득을 높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세수 증대와 재정 건전성이 확보되는 선순환 효과도 기대된다. 세수가 풍족해진 지금이야말로 세금부담을 줄여 경제활력을 되살릴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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