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느라 공적연금 전반에 대한 논의는 더 깜깜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이번 논의가 국민연금뿐 아니라 기초연금, 퇴직연금까지 전반적인 노후소득 강화라는 큰 목표 아래 진행돼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빈말이 될 우려가 커졌습니다. 소득대체율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민감한 걸까요.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5일 국민연금 개편에 대한 16개 시도별 대국민 토론회 대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노인·청년·경영계·노동계 등 10개 포커스 그룹을 대상으로 17회에 걸쳐 진행한 소규모 간담회와 공단 홈페이지 등을 통한 온라인 의견 수렴도 마무리 중입니다.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 첫 도입돼 이후 5년마다 재정추계와 함께 개편을 거치고 있습니다. 올해가 제4차 추계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렇게 일반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난 8월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내놓은 개편안을 두고 민심이 들끓자 놀란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취지는 훌륭했지만 사회적 합의는 까마득해 보입니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두고도 좀처럼 각계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어서입니다.
◇소득대체율=40년 꼬박 보험료 냈을 때 받는 연금액
소득대체율은 개인이 평생 벌어들이는 소득의 평균(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지급액의 비율을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연금으로 받는 돈이 내가 젊어서 일하면서 벌었던 돈에 비해 어느 정도 되는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2018년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5%인데, 내가 평생 번 돈이 월평균 100만원이라면 65세 이후 월 45만원을 국민연금으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첫 제도 도입 때 소득대체율은 70%였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도 개편을 거치면서 보험료를 올리는 대신 소득대체율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바뀌어왔습니다. 지금 45%인 것도 2028년까지 매년 0.5%포인트씩 40%까지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소득대체율이 계속 변하더라도 가입자는 자신이 가입한 해의 소득대체율에 따라 나중에 연금을 돌려받습니다.
물론 수급액의 결정기준인 만큼 가입자가 내는 돈인 보험료율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늘리려면 내는 돈(보험료율)도 많아져야 기금의 수지균형이 맞기 때문입니다.
앞서 제도발전위는 이 소득대체율을 더 떨어뜨리지 않고 45%에서 고정하는 (가)안과 현행 규정대로 40%를 유지하는 (나)안 두 개를 제시했습니다. (가)안은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대신 보험료율을 즉각 2%포인트 올리자고 합니다. (나)안은 소득대체율을 건드리지 않는 대신 보험료율을 더 천천히 조금씩 올리자는 겁니다.
◇“소득대체율 무조건 올려야” VS. “이상적인 얘기만 하면 안 돼”
조심해야 할 점은 소득대체율은 기본적으로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연금지급액 비율이란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소득대체율 45%’는 가입자가 40년 동안 꼬박 보험료를 냈을 때 그만큼 받는다는 뜻입니다. 가입기간이 짧으면 실제 소득대체율도 45%에 못 미치게 됩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애초 도입된 지 30년밖에 안 됐습니다. 때문에 올해 기준 가입자의 실질 대체율은 평균 24%에 불과합니다. ‘용돈연금’이란 비아냥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소득대체율을 최소한 50%까지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 강경합니다.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내건 공약이기도 합니다. 일단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보험료 인상도 고려해보겠다는 게 노동계의 기본 입장입니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더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보장성을 계속 높여가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소득대체율을 올려도 보험료 인상은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김정아 민주노총 울산본부 정책국장은 “보험료를 올릴 게 아니라 기금수익률을 올리거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절반을 부담하는 경영계나 스스로 보험료 전액을 내야 하는 소상공인·자영업계는 이런 주장에 난색을 표합니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본부장은 “장기재정을 고려하면 소득대체율을 40% 이하로 낮추는 방안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현재 (기업의) 국민연금 보험료 부담이 연간 40조원인데 보험료율을 1%포인트만 올려도 4조원 는다”고 말합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은 평균 가입기간을 40년으로 가정했을 때 실질소득 대체율은 35%”이라며 “유럽연합(EU) 27개국도 평균 38%밖에 되지 않는다”며 우리의 현행 대체율 40%가 낮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나친 이상론에 얽매여 무작정 소득대체율을 높이자고만 하는 건 문제라는 질타도 나옵니다. 지난 5일 대구 지역 대국민 토론회에 참석한 한 60대 시민은 “먼 미래 세대까지 안정적으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건데 소득대체율을 더 올리자고 하면 어떡하느냐”며 “안 되는 걸 갖고 이상적으로 주장하기보다 현실적으로 함께 책임질 수 있는 방안을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도 지난 8월 펴낸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추가로 인상하자는 것은 현 세대의 ‘모럴해저드’를 강화시키는 나쁜 주장”이라며 “노인 빈곤율에 해당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국민연금 제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어서 기초연금을 강화하는 게 낫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노후소득 강화 ‘큰 그림’ 논의는 공전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입니다. 내부적으로는 명목 소득대체율에 집착하는 것은 실익이 떨어진다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소득대체율 45~50%는 가입기간이 40년 이상일 때 얘기”라며 “각종 크레디트·보험료 지원 등으로 사각지대를 줄이고 가입 기간을 늘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명목 대체율보다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여줄 수 있는 방안이 더 절실하다는 얘기입니다. 소득대체율 자체를 높이면 아무래도 보험료율 인상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그래도 정부·정치권이 과감하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 때문입니다. 20년 만의 보험료 인상 가능성을 앞에 둔 상태에서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두겠다고 하면 국민적 불만이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공방에 묶여있는 동안 ‘국민연금+기초연금+퇴직연금’ 등 각 연금제도를 내실화하고 다층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강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는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기초연금은 저소득 어르신을 대상으로 나홀로 인상 스케줄을 앞당기고 있고 퇴직연금은 사실상 방치돼 있습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는 지난달 국회 토론회에서 “퇴직연금이 제 역할을 한다면 급여율 40%도 괜찮다고 본다”면서 “튼튼한 기초보장과 함께 노인들이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 또한 함께 해야만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도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구조적으로 재편하는 다층체계에서 열어놓고 토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국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안을 만들어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바람도 나옵니다. 지난달 서울지역 대국민 토론회에 참석한 한 50대 시민은 “대통령과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앞세워 뒤에 숨을 게 아니라 공익을 위해 필요한 안을 만들어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