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김상희 부위원장 "돈·시간·미래 없으니 출산 꺼려...가족 복지 예산 늘려야"

[서경이 만난 사람-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저출산에 투입한 150조, 보육 인프라 구축 집중...실질적 지원은 취약
출산휴가·육아휴직·육아기 근로단축 등 혜택 보는 사람 소수에 그쳐
정부가 아이 낳을 환경 먼저 조성...증세보다 자원배분으로 재원 마련을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권욱기자

대담=김능현 경제부 차장 nhkimchn@sedaily.com

지난 2006년부터 올해까지 정부는 12년간 저출산 정책에 150조원을 썼다. 성적표는 거꾸로다. 지난 2·4분기 합계출산율은 0.97명으로 떨어졌고 올해 연간으로도 1.0명 아래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평생 동안 아이를 한 명도 안 낳는 여성이 한 명이라도 낳는 여성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작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이보다 더 피부에 와 닿는 숫자는 따로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7월 발표한 조사를 보면 ‘정부의 출산·양육 지원정책이 전혀 혹은 거의 도움이 안 됐다’는 응답자가 열 명 중 일곱 명(68.8%)이었다. 우리 아이들과 청년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도 각각 전체의 52%, 73.4%에 달했다. 국민이 느끼기에는 실효성 있는 정부의 지원도, 미래 행복에 대한 희망도 약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저출산 정책의 컨트롤타워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다.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부위원장은 3선의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맡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초저출산 현상에 대해 “자신도 불행한데 아이를 낳아 그 아이에게 행복한 삶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이 크기 때문”이라며 “국가가 ‘아이를 왜 안 낳느냐’고 할 일이 아니라 ‘아이 낳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저출산 예산 150조원’의 허울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보육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느라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은 취약했다”는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에서 제기한 ‘출산주도 성장’에 대해서는 “국민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달 발표될 예정인 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재구조화 작업에 한창인 김 부위원장을 지난달 12일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아이 낳기를 꺼리는 현상은 한 가지 원인에서 오는 게 아니다. 주거와 일자리는 물론 보육, 사교육, 경력단절, 과도한 노동, 노후 불안 등 삶에 대한 총체적인 불안감이 결합한 결과다. 김 부위원장은 초저출산 현상에 대해 “돈과 시간, 미래에 대한 기대가 모두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도 불안한데 아이 낳고 가정을 꾸리는 부담을 안고 싶어 하지 않아요. 당장 취업도 어렵지만 일자리가 있어도 과연 앞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될지 불안합니다. 정부가 보육에 많은 투자를 했는데도 여전히 믿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얘기들도 많이 들리고요. 혼자 살면 작은 오피스텔도 괜찮지만 아이를 낳으면 어느 정도 여건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아파트라도 하나 있어야 할 것 같고 사교육 걱정도 크죠. 그렇게 키워도 아이가 행복할지 확신이 없습니다. 아이를 키울 돈도, 시간도, 미래에 대한 자신도 없으니 ‘안 낳겠다’는 정서가 일반화된 겁니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초저출산(합계출산율 1.3명 미만) 국가가 된 것은 2002년(1.178명) 이후 17년째다. 이에 정부는 2005년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하고 2006년부터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해 관련 정책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는 제3차(2016~2020) 기본계획 도중이다. 저출산 해소 명목으로 투입된 예산만 2006년부터 올해까지 152조8,000억원(국회예산정책처 추산)이다.


‘150조원을 들였는데도 효과를 못 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김 부위원장의 생각은 반대다. 그는 “정부가 실질적으로는 돈을 안 쓴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제까지 투입한 저출산 예산의 70%가량이 보육 분야에만 쓰였다는 게 그 이유다. 저출산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저출산 예산 중 보육 인프라 투자 비율은 71%로 스웨덴(55%)이나 프랑스(40%)에 비해 월등히 높다. 김 부위원장은 “지금까지 저출산 예산의 대부분은 보육 인프라를 갖추는 데 집중돼 주거·일자리·사교육 등 복합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저출산 현상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무상보육’도 굉장히 큰 성과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투자를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가 현재 ‘수혜자보다 사각지대가 더 큰’ 각종 지원제도다. 지금도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경력단절여성 지원 등 출산·양육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는 많다. 하지만 혜택을 보는 사람은 소수다. 김 부위원장은 “근로자의 85%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직원이나 자영업자는 정작 제도가 있어도 쓸 수가 없다”며 “‘제도의 사각지대’라지만 실상은 혜택을 못 보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저출산위가 7월 내놓은 문재인 정부의 첫 저출산 대책은 이런 맹점을 보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출산휴가급여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자·자영업자에게 출산지원금을 주고 중소기업 근로자가 근로시간 단축이나 남성 육아휴직 등을 더 잘 쓸 수 있도록 정부 지원금을 늘리는 등의 내용이다.

‘그래도 기업이 못 쓰게 눈치 주면 그만 아니냐’는 질문에는 김 부위원장도 “기업이 제도를 활용하지 않으면 정부도 어쩔 도리는 없다”고 토로했다.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도 검토한 적이 있지만 어렵다는 쪽으로 결론 냈다고 했다. 그는 다만 “제도가 현장에서 잘 작동하고 기업 문화가 선진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정부는 정책으로 도와줘야 한다. 제도 활용률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중소기업도 우수 인력을 유치하려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부위원장은 앞으로도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정부가 더 많은 복지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아동·가족 복지 공공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2%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가족 복지 지출은 ‘저출산 예산’이 아니라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각에서 나온 ‘저출산세’ 도입과 같은 증세보다는 자원 배분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권욱기자

최근 야당에서 제기한 ‘출산주도 성장’에 대해서는 “현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얘기”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태어난 아이가 20세가 될 때까지 1인당 1억원을 주자고 제안했다. 김 부위원장은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할 만큼 출산과 양육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1억원 지급’과 같은 제안은)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부위원장은 저출산 대책으로 이민을 활성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초저출산으로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전문인력 위주로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13명으로 우리나라와 함께 전 세계 최하위 수준인 대만도 최근 중견 기술자와 외국전문인력 및 투자이민을 적극 장려할 방침임을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국제적 흐름은 막을 수도 없고 막을 일도 아니다”라면서도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 이민이나 국제결혼을 장려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그에 따라 개인과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엄청나게 크다”며 “다문화 가족의 사회 통합과 이민 활성화 흐름은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하지만 일부러 장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정리=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약력]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1954년 충남 공주 △1976년 이화여대 제약학과 학사 △1987~2007년 한국여성민우회 부회장·상임대표·이사 △2000~2006년 여성환경연대 공동대표 △2002~2004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2003~2006년 한국방송공사 이사 △2006~2007년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2016~2017년 국회 민생경제특별위원회 위원장 △2008년~ 18·19·20대 국회의원 △2017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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