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연금기금 편법개편 땐 독립성 유지되겠나

정부가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그동안 거수기 논란을 빚었던 기금위를 사실상 상설기구로 전환하고 이를 뒷받침할 사무국을 신설하는 한편 민간위원의 자격요건을 새로 만드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국민연금법 시행령을 이런 방향으로 고쳐 내년 2월부터 새 위원회를 가동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개편안을 두고 “전문성을 가진 위원들이 의사결정에 상시 참여해 그 결과에 책임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격요건 신설로 위원의 전문성을 갖추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정작 중요한 독립성 확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기금위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내용을 시행령으로 정하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언제든 변경할 수 있게 된다. 그때그때 달라지면 기금운용의 권한과 독립성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손쉬운 시행령 개정 추진은 일종의 꼼수이기도 하다. 30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국민적 합의 없는 기금운용 개편을 당장 중단하라”고 일제히 반발한 연유는 여기에 있다.

개편안의 법률적 지위를 떠나 세부내용을 들여다보더라도 독소조항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기금위의 전문성 제고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무국 설치는 누가 보더라도 기금운용의 탈정치화에 역행하는 개악이다. 복지부 산하에 사무국을 둔다면 기금운용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사안에 따라 기금운용본부와 중첩되는 옥상옥 논란도 피할 길이 없다. 굳이 사무국을 설치해 기금위의 비대화를 초래할 이유는 없다. 지금도 기금위 수장이 투자·자산운용 분야의 문외한인 복지부 장관인 것부터 어색하다.

국민연금에 국민 대다수의 미래가 걸린 만큼 기금운용은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안정적 수익률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자면 지배구조의 독립성 강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번처럼 시행령을 고쳐 개악할 것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친 뒤 법을 바꿔 기금운용의 지배구조에 근본적인 변혁을 줘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