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 작업에 돌입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 중 하나였지만 그동안 다른 현안에 밀려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와 국회를 중심으로 개편 작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행정권한의 민간 위탁 사례 및 한계’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금융위가 갖고 있는 인허가권, 검사·제재권 등 행정권한을 민간기관에 맡길 때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와 주요 국가 사례 등을 따져보겠다는 취지다.
금융위는 “금융시장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는데 현재 금융감독 시스템에서는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의 업무 영역에 대한 구체적인 규율이 없어 권력이 남용되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연구 용역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 차원에서 금융감독 시스템의 규율 정비 필요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 금융위-금감원 체제로 구성된 금융감독체계는 이명박 정부 때 완성됐으며 이후 적절성을 두고 논란을 거듭해왔다. 금융위설치법에 따르면 금융위는 금융정책과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 등에 관한 업무를 총괄한다. 다른 산업에 비유하면 자동차 산업 진흥 정책을 마련하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현대자동차를 감시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같은 간판을 달고 운영되는 셈이다. 금융감독의 또 다른 축인 금감원은 금융위 업무 중 검사·감독·행정제재 등의 업무와 권한을 위탁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금감원에서는 “금감원이 독립적이고 충분한 제재권한을 갖지 못해 각종 금융사고를 막는 데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반면 금융위에서는 “액셀(진흥정책)과 브레이크(감독권한)를 한 사람이 밟아야 차를 안전하게 몰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왔다.
조직을 방어해야 하는 금융위는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국회와 금감원 모두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다. 국정과제와 국회에 제출된 관련 입법안 및 학계 의견 등을 보면 대체로 금융위의 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에 흡수시키고 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로 이관하는 한편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만 전담하는 별도 조직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 있다.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과 윤석헌 금감원장 모두 대표적인 금융감독체계 개편론자들이다. 올 초 국회에서는 금감원의 행정처분권 권한을 강화하는 금융실명법 개정안(이학영 의원)이 발의되기도 했다. 금융위 입장에서 보면 장관급 조직이 국(局)으로 쪼그라드는 위기에 몰린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에서 어떤 식으로든 감독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이 뚜렷하다”며 “자칫 금융위와 금감원의 밥그릇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