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식품용기나 코팅 프라이팬, 세제, 향수, 샴푸, 헤어스프레이, 매니큐어, 전기모기향, 어린이 장난감… 우리와 친근한 이들 생활용품에는 환경호르몬으로 불리는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플라스틱을 말랑말랑하게 하거나 향이 오래 지속되도록 해주는 화학첨가물인 프탈레이트류, 코팅 프라이팬 등의 코팅제에 들어가는 과불화화합물, 세제에 포함된 계면활성제 원료인 펜타노닐페놀 등이 대표적이다.

환경호르몬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 생체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교란하는 내분비계 교란물질을 말한다. 화학구조가 사람의 생체 호르몬과 비슷해 몸속 세포물질과 결합해 비정상적인 생리작용을 한다. 남아가 태아 시기에 환경호르몬에 과다 노출되면 생식기관 발달저해로 잠복고환 같은 비뇨생식기 기형이 생길 수 있고 성인이 돼 정자의 수가 줄거나 운동성을 떨어질 수 있다. 여성에서는 생리불순, 성 조숙중, 난임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남녀 모두에게 생식기능의 이상, 성비균형 파괴, 호르몬 분비 불균형, 면역기능 저해, 유방암·전립선암 증가 등을 초래할 수 있다.

플라스틱은 환경호르몬의 중요 노출원이다. 플라스틱에 포함된 프탈레이트·비스페놀A 등 환경호르몬은 생식·면역기능을 떨어뜨리고 암 발생률을 높일 수 있다.


코팅 프라이팬의 코팅제에는 과불화화합물이 포함돼 있다. 이 중 과불화옥탄산은 동물실험에서 간·생식·신경독성, 발암성 위험이 보고됐다. 국내 산모의 모유에서 프랑스 여성의 9~30배나 되는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됐는데 가열된 코팅 프라이팬·냄비를 통해 과불화화합물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지난 2015년부터 과불화화합물을 쓴 코팅 프라이팬 유통을 금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규제 기준조차 없다. 코팅이 안 된 제품을 쓰고 코팅제가 벗졌으면 안 쓰는 게 좋다.

전기모기향, 매트식 살충제에도 세계야생기금에서 정하는 환경호르몬인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로 매일 계속해 흡입하면 화학물질과민증에 걸릴 위험성이 크다. 특히 저농도 노출 시에도 내분비 교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세제에 포함된 계면활성제 원료인 펜타노닐페놀은 세계 야생기금에서 정한 67종 환경호르몬 중 하나다. 유럽에선 세척제·화장품 등에 사용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환경호르몬은 식품 제조·유통·소비 과정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올해 초 국내 한 중소 홍삼농축액 제조업체가 대만에 수출한 홍삼 제품에서 환경호르몬 추정 물질인 프탈레이트가 검출돼 반송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 결과 홍삼을 찌고 농축액을 추출하는 데 쓰이는 플라스틱 기구와 용기가 문제였다. 비슷한 플라스틱 기구를 쓰는 홍삼 농축액 제조회사 50곳, 55개 제품을 검사했더니 제조사 35곳(70%), 36개 제품(65%)에서 프탈레이트류가 검출됐다. 식품은 프탈레이트류 검출 허용기준이 없어 플라스틱 포장·용기에서 녹아 나오는 용출기준을 적용했는데 위해성 때문에 어린이용 장난감에 사용금지된 DEHP가 기준치의 최대 100배, DBP가 최대 80배까지 나왔다. 일회용 컵라면 용기·종이컵, 배달음식에 사용되는 랩 포장, 포장 상태로 데워 먹는 편의점 식품 등도 비슷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계명찬 한양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정부·기업·소비자가 환경호르몬을 유발하지 않는 대체물질 개발·사용, 환경호르몬 유발물질 사용 최소화, 일회용 플리스틱·종이컵 등 사용자제 유도·실천에 적극적으로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