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한국 조선 업계에 모처럼 만에 훈풍이 불고 있다. 조선사들이 지난 2016~2017년 2년간의 수주절벽을 딛고 올해 일감 확보에 속도를 내면서 불황의 늪을 조금씩 빠져나오는 모습이다. 고무적인 것은 최근 몇 년간 한국을 앞질렀던 중국 업체들을 수주 실적에서 크게 따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한국 조선사들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등의 발주가 증가 추세이고 선가도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10일 친환경 LNG선박 등 신규 선박을 확보하기 위해 대한해운·SK해운 등 4개 선사에 2,100억원 규모의 투자·보증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조선업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호황기와 비교하면 여전히 일감이 부족한데다 중국 업체의 위협도 계속되고 있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경계감도 있다. 10일 영국의 조선 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 조선사들은 지난 9월 전 세계 선박 발주 물량 252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 중 163만CGT를 수주했다. 전체 중 65%의 일감을 따내며 5개월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중국은 35만CGT로 시장점유율 14%에 그쳤다. 정부 지원과 저임금을 바탕으로 수주 싹쓸이에 나섰던 중국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중국의 관 주도형 조선 산업이 기술력과 품질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주가 늘어나는 추세인데다 최근 중국의 수주량도 지지부진해 우리 업체들이 선전하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이후 전망도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조선사들의 선전으로 세계 선박 수주 1위 자리도 올해는 탈환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우리 조선사들은 3·4분기까지 950만CGT를 수주해 651만CGT에 그친 중국을 크게 앞서고 있다. 여기에는 국내 조선사의 경쟁력이 앞서는 선종의 발주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한몫했다. VLCC의 경우 그간 선가가 많이 하락한데다 유가 상승으로 최근 발주가 늘어나고 있다. LNG운반선도 LNG 수요 증가 등으로 발주가 증가세에 있다. 전 세계 선박 시장이 최악의 침체기에 빠졌던 2016년만 해도 VLCC는 14척, LNG운반선은 10척 발주되는 데 그쳤으나 올해는 VLCC 38척, LNG운반선 43척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여기에다 해양플랜트도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009540)은 이날 미국 석유개발 회사인 엘로그익스플로레이션과 4억5,000만달러 규모의 킹스키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중공업이 해양플랜트를 수주한 것은 2014년 11월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유가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향후 해양플랜트 일감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반면 그간 중국 조선사들이 강점을 보였던 벌크선은 공급과잉 등의 이유로 발주량이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벌크선 발주량은 총 353척이었으나 올해는 3·4분기가 끝난 현재 절반 수준인 185척에 그치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중국에 내준 1위 자리를 한국이 다시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내 자재비용과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는 점도 중국 조선사들에 부담이다.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는 “최근 중국 내 철강공급 규제로 강재 가격이 많이 오른데다 조선 건조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도 상승했다”며 “중국 조선사들이 기술력이 낮은 상황에서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을 상쇄하기 위해 선가를 올리다 보니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올 5월 우량업체로 꼽히던 ‘저장어우화조선’이 경영환경 악화로 파산했다.
선가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수익성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클락슨에 따르면 9월 신조선가지수(NPI)는 130포인트를 기록해 2016년 3월 이후 처음으로 130선을 넘었다.
다만 아직 상황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당장 올해 대형 조선 3사의 실적만 봐도 부진이 여전하다. 증권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올 영업적자로 3,765억원, 삼성중공업은 2,503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는 대우조선해양만 유일하게 흑자가 전망된다. 업계의 한 임원은 “올해는 한국 조선사들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선종에서 발주가 증가하면서 수주가 늘어나고 있지만 부활을 말하기는 이르다”며 “자산 매각, 비용 절감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