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구본준 LG 부회장 계열분리는 어떻게?…희성전자 지분스왑으로 가닥 잡히나

1996년, 1999년, 2003년, 2005년, 그리고 2018년?

재계 순위 4위인 LG그룹 사사(社史)에서 잊을 수 없는 해들이다. 1996년에는 희성그룹, 1999년에는 LIG그룹, 2003년에는 LS그룹, 2005년에는 GS그룹이 각각 분리됐다. 다른 대기업과 달리 유독 그룹 분리가 많았던 이유는 유교적 가풍에 기반한 장자 승계 문화가 밑바탕에 깔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경영자들은 계열분리를 통해 아름다운 작별을 마무리해왔다.

2018년 LG그룹은 구광모 회장 시대를 열며 또 한번 계열 분리설이 돌고 있다. 구본준 LG 부회장이 총수 역할을 대신하며 LG그룹의 중심을 잡아왔고 이에 대한 노고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현실적으로 1~2년 내 계열 분리는 힘들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와는 달리 소액 주주의 권익이 한층 강화된 상황에서 계열 분리는 풀기 어려운 고차원 방정식이 되어 버렸다”며 “대주주들의 대의명분이 소액 주주들의 목소리를 넘어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LG그룹 내부 관계자는 “일부 계열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나리오가 흘러나오지만 현재로서는 결정 된 것도 구체적으로 논의 중인 것도 없다”고 전했다.


◇계열 분리 현실적으로 가능할까=구광모 회장 체제 출범 이후 LG그룹 안팎에서는 구본준 LG 부회장이 ㈜LG 지분 7.57%를 활용해 어떤 계열사를 분리해 나갈지 줄곧 관심이 쏠렸다. 시나리오만 4~5개에 사실상 대부분의 계열사가 분리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데 시장에서 떠돌던 이야기들은 대부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게 IB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그룹 내 전장 사업부 분할 시나리오가 대표적이다. LG그룹 내 전장 사업부문은 크게 5개 회사에 나뉘어 있다. LG전자 내 VC부문은 인포테인먼트 제품과 전기자동차용 구동부품, ADAS 및 자동차 램프 등을 생산한다. LG화학에서는 전지 부문이 전장 부분이다. 친환경차용 중대형 전지를 생산한다. LG하우시스도 전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 경량화 부품과 자동차용 일반 부품 등을 만든다. LG이노텍은 모터 센서와 차량통신, 차량용 카메라를, LG디스플레이는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제작한다.


문제는 LG그룹 내 전장 사업을 영위하는 모든 회사가 상장사라는 점이다. 상장사에서 사업 부문을 분리하려면 주총을 열고 주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사업부 분할은 특별 결의 사항이라 주주 동의 조건이 더욱 까다롭다. 주주들이 주요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LG그룹 내 장자 승계 원칙의 기회비용으로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VC 사업부의 계열분리를 주주들이 동의할지도 미지수다. 구본준 부회장이 보유한 지분가치는 1조원 전후. LG 전장 사업부들의 매출액 합계는 8조원이 넘는다.

전장 이외에 계열 분리가 거론됐던 LG유플러스나 LG이노텍 등 주요 계열사도 상장사다. 대주주 변경은 주총을 열지 않아도 되지만 그룹 계열사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은 주주들에게도 리스크다. LG유플러스가 LG그룹에서 분리되는 상황을 투자자들이 달가워할 이유가 없다. 대주주들의 명분에 소액 주주들만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액 주주 권한이 강화되는 최근 분위기에서 LG가 이런 리스크 큰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총수일가 간 사적 거래 논란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계열 분리가 그룹 전체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8월 LG그룹의 계열 분리에 대해 “유사시 지원 가능성이 신용등급에 반영돼있는 계열사가 분리되면 분리된 기업의 지원능력에 따라 신용등급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LG그룹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연내 계열분리를 위한 회의에서도 현실적으로 분리가 쉽지 않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힘실리는 희성그룹 지분 스왑=그렇다고 구본준 부회장이 계속 LG그룹 내에 남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IB업계에서는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구본준 부회장이 보유한 LG 지분과 구광모 회장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보유한 희성전자 지분을 스왑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희성그룹은 구본능 회장과 구본식 부회장 일가가 함께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구 회장이 희성전자 지분 42.1%를, 구본식 부회장 일가가 16.7%를 보유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지난해 구본능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희성금속, 희성정밀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삼보 E&C에 매각 정리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희성전자 및 화학 계열사와 삼보이엔씨를 축으로 하는 건설 금속 양대 축으로 교통정리 했다.

구 부회장이 희성그룹 내 전자부품 부문을, 구본식 부회장은 건설 부문으로 재편될 수 있다. 비상장사라 주총 등의 걸림돌도 없다. 인수가격도 거의 들어맞는다. 희성전자가 구본식 부회장(12.7%)·구웅모씨(13.5%) 소유의 희성전자 지분 26.2%(585만2,953주) 자사주를 사들일 당시 인수금액은 4,820억원, 주당 8만2,300원이었다. 이 가격으로 구본준 부회장이 희성전자 1대 주주인 구본능 회장의 소유지분 42.1%(937만9,200주)를 인수한다고 가정하면 7,720억원이다. 구본준 부회장이 소유한 9,600억원 어치의 ㈜LG 지분으로 충분하다. 희성전자는 출범 이후 2017년까지 22년간 단 한 번도 영업적자를 낸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 평균 1,080억원을 벌어들였다

다만 희성그룹과의 지분 스왑 과정에서도 문제점은 있다. 상장사인 LG 지분 가치는 명확하지만 희성그룹은 비상장사가 대부분이다. 지분가치를 얼마로 평가하느냐가 관건이다.

◇불확실성 지속에 계열사 주가도 동반 약세=계열분리가 가져올 수 있는 불확실성에 LG그룹을 대표하는 주요 계열사의 주가도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다. LG전자가 대표적이다. 올해 4월 11만원대였던 LG전자 주가는 9월 6만9,000원까지 급락했다. 10월 들어서는 6만5,200원(이하 10일 종가)를 기록 중이다. 52주 신저가다. ㈜LG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지난 1월 9만6,500원이던 주가는 6만7,200원까지 급락했다. LG이노텍, LG 디스플레이도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계열 분리나 지분 스왑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라며 “투자자들이 가장 꺼리는 것이 불확실성이란 점에서 주가 약세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100%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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