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환 한국투자신탁운용 상품전략본부장
지난 9월 일본은행은 연간 약 6조엔 규모의 상장지수펀드(ETF) 추가 매입 의사를 밝혔다. 일본은행은 2010년 이후 국채 매입과 더불어 2%대의 물가목표 달성 수단으로 ETF를 활용하고 있으며 이미 일본 시가총액의 4%에 달하는 25조엔 정도를 보유해 운용하고 있다.
1976년 미 버클리대의 닐스 하킨손 교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ETF는 미국 증권거래소에서 구체화돼 1993년 출시된 이래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8월 말 현재 전 세계 ETF 규모는 5조7,000억달러(5,700개 펀드)에 이른다. 전년 말 대비 8.7% 증가한 규모다. 우리나라도 전년 말 대비 9.5% 성장하며 40조원대에 육박했다. 펀드시장과 차별화된 ETF의 성장세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거래 편의성을 들 수 있다. 주식과 같이 수시로 교체매매가 가능하며 다양한 상품에 소액으로 분산투자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 ETF의 매력이다. 다음은 시작의 효율성 증대로 액티브펀드의 장기 초과성과 시현이 어려운 점도 ETF 수요에 반사적인 영향을 줬다. 마지막으로 레버리지나 인버스 등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접근이 어려웠던 투자방법을 제공한 부분도 큰 매력이다.
ETF 성장의 세 가지 이유는 단순히 나열을 넘어 ETF 시장의 진화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매매의 용이한 수단(trading tools)이었던 ETF는 이후 규모의 제약 없이 적정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요소(building block)가 됐다. 발전을 거듭해 다양한 투자수요에 부응하는 솔루션(investment solution)으로까지 진화했고 일본의 사례처럼 통화정책의 수단으로까지 활용되기도 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최근 EMP(ETF Managed Portfolio) 펀드의 성장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ETF의 종류는 6,000개에 이른다. 기초지수는 각국의 주가지수부터 채권·부동산·원자재 등 투자가 가능한 모든 자산을 커버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베타 등 첨단 모델을 이용한 초과성과 전략이나 파생상품을 이용한 레버리지나 인버스 형태의 수익구조를 가진 ETF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분산투자 기법은 예전에는 위험을 줄이고 기대수익을 높이고자 하는 거액 기관투자가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주식은 물론 해외채권·부동산·원자재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다양한 ETF를 조합한 EMP 펀드의 등장으로 이제는 개인들도 비교적 소액을 투자하면서 유동성 부담 없이 충분한 분산투자의 효용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과거 일반적인 펀드가 특정 투자시장 내 좋은 대상을 선별해 초과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EMP는 좋은 시장을 잘 선별해 투자하는 것을 통해 초과성과를 창출한다. ETF가 초과성과의 개념이 없는 패시브 상품이라면 EMP는 초과성과의 원천만 다를 뿐 다분히 액티브한 상품이다. ETF는 패시브적 한계를 EMP를 통해 극복하면서 또 한 차례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