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캠페인-아픈 사회,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 "이대론 난임률도 세계1위 오명 쓸판...치료 대안 '난자공여' 규제 완화해야"

■국내 최고 난임 전문의 이원돈 원장
내년 시행 난임 시술 기관 평가
임신율을 서열로 매기겠다는 셈
일찍 결혼해 아이 기르고 싶은
사회적 여건 조성이 근본 해결책


“아이를 낳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부부의 고통은 어떤 질병보다도 상처가 큽니다. 난임 문제는 단순히 난임 시술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결혼과 육아를 아우르는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이원돈(사진) 서울마리아병원장은 “이대로라면 한국은 자살률에 이어 난임률에서도 세계 1위라는 오명을 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임신은 나이가 가장 중요한데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세대가 늦게 결혼하고 출산을 미루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30년 가까이 난임 부부를 진료한 이 원장은 3만건 이상의 난임 시술 기록을 보유한 국내 최고 난임 전문의로 꼽힌다.

이 원장은 “난임 치료기술이 아무리 비약적으로 발전해도 ‘나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며 “10년 넘게 난임 치료를 받아 임신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에게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할 때가 난임 전문의로서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말했다. 난임을 질환으로 여기지 않고 의료기술을 맹신하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문제라는 얘기다.


이 원장은 정부의 난임 정책에 대해서도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근시안적인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정부가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는데 보편적인 지원이 아니라 저소득층 위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난임 시술비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는 하지만 한국의 난임 시술비는 국제적 수준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므로 고소득층까지 정부가 지원하기보다는 저소득층 등을 중심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보편적인 의료복지 대신 사회적 취약계층 위주로 난임 정책을 펴야 한다는 지론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이 원장은 내년 초 시행되는 난임 시술 의료기관 평가 시범사업에 대해서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난임 시술 의료기관 평가는 해당 병원의 임신율을 서열로 매기겠다는 것인데, 결국 난임 부부는 어느 병원의 임신율이 높은지에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임신 가능성이 낮은 환자의 진료를 병원이 거부하는 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난임 치료의 가장 효율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난자 공여에 대해서는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난자 공여는 정상적인 임신이 불가능한 여성이 타인으로부터 난자를 기증받는 제도다. 하지만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무상 기증만 가능하고 매매는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이 원장은 “난임 부부는 입양보다 난자 공여를 선호하는데 절반은 자신의 핏줄이기 때문”이라며 “난자 공여에 대한 절차와 규제가 엄격한 탓에 일선 병원이 이를 꺼리면서 자매 위주로만 일부만 시행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난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에서 활발하게 시행 중인 난자 매매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가 왔다는 얘기다.

이 원장은 “난임 문제는 환자·병원·정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인 만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며 “질병의 관점에서 벗어나 일찍 결혼해 아이를 기르고 싶은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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