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핀테크(금융+기술) 규제 완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관련 업체들이 새로운 사업 추진을 위해 의뢰한 유권해석에 대한 회신기간은 평균 69일로 나타났다. 일부 유권해석 회신기간은 무려 426일이나 걸린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당국이 말로는 규제혁신을 외치지만 보신주의와 책임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규제혁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담당 직원이 연속성 없이 수시로 바뀌면서 업계가 매년 새로 상황설명을 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11일 금융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자금융업자 등 핀테크 업체와 금융회사가 신청한 유권해석 의뢰에 대한 평균 회신기간은 69일로 나타났다. 지난 2016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금융회사가 신청한 총 1,094건의 유권해석 가운데 핀테크 업체는 23%(250건), 은행은 19%(211건)를 차지했다. 핀테크 업체들은 기존 금융권이 시도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금융당국에 유권해석을 신청하는데 회신기간이 길어질수록 핀테크 업체들은 새로운 사업 착수에 늦어지거나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유권해석이 늦어지면 사업을 포기하거나 법적인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시장에 이미 출시된 사업모델을 답습해야 하기 때문에 혁신성이 떨어지는 사업모델을 내놓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회신기간이 1년을 넘긴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A업체가 유권해석을 요청했지만 금융당국은 426일 만에야 회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금융당국의 회신이 늦어지는 이유는 핀테크 특성상 정부 여러 부처가 업무영역에서 겹칠 수밖에 없는데 금융위가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전면에 나서기보다 다른 유관부처 입장을 고려해 일부러 회신을 꺼리고 있어서라는 지적이다. 보험과 신(新)기술을 융합한 인슈어테크 스타트업의 한 대표는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놓고 싶어 유권해석을 신청해도 의료법을 소관하는 보건복지부 등 다른 부처와 의견 충돌을 빚을 수 있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이 회신을 꺼리는 것 같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개인간거래(P2P) 업체의 한 관계자도 “P2P 업계는 가이드라인으로 규제받고 관련 법안이 제정돼 있지 않다 보니 유권해석을 신청해도 회신이 늦어지거나 어렵다는 답변을 받는다”며 “감에 의존해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금융당국은 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올해 3월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발의해 국회 통과를 추진 중이다. 이 법안은 핀테크 등 혁신 금융 서비스를 한정된 범위 내에서 테스트할 때 기존 규제를 완화하거나 면제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정치권의 무관심에다 여야 눈치를 보는 금융당국의 소극적 자세로 답보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핀테크 규제 체계를 현행 포지티브(원칙적 금지·예외 허용) 방식에서 네거티브(원칙적 허용·예외 규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기창 고려대 교수는 “금융당국이 핀테크 업체가 새로운 사업을 하기도 전에 손을 대기보다는 실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때 처벌을 강화하는 식으로 규제의 틀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