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텔링] '말폭탄' 주고받던 김정은-트럼프가 사랑에 빠진 이유는

김정은, 일가족 몰살 위기·경제난 몰려
트럼프, 잇단 악재에 정치적 입지 흔들
'한반도 비핵화' 추진해 국면전환 꾀해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으로 중재 나서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월 2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자신을 사랑을 빠진 연인 관계에 비유했는데요. 1년 전 트럼프 대통령이 “꼬마 로켓맨(김정은)이 자살 행위를 하고 있다”며 위협할 때와는 천양지차의 분위기입니다. 당시 김 위원장도 “노망난 늙은이를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며 막말 전쟁을 벌었지요.

하지만 지금 한반도에는 훈풍이 감돌고 있습니다. 남북간, 북미간 대화가 지속되면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지요. 금방이라도 전쟁을 벌일 것처럼 말 폭탄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왜 대화의 장으로 나온 것일까요?


먼저 김 위원장의 처지를 볼까요. ‘좌충우돌 트럼프’가 북한을 폭격하면서 일가족이 몰살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고 합니다. 실제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로 유명한 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 따르면 트럼프는 임기 초반 북한 선제 타격을 검토했다고 하네요. 특히 지난해 7월 이후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전략 폭격기 B-1B 랜서의 북한 비행은 공포,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이 폭격기는 괌 기지에서 출격하면 북한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고 불과 2시간만에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는 이른바 ‘참수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고 있죠.

경제난도 거론됩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제재에 중국마저 동참하면서 올 상반기 수출이 무려 90% 가까이 줄었습니다. 수백만명이 굶어 죽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과 같은 어려움이 다시 닥친다면 핵무기가 있더라도 체제 유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북한으로서는 제재 해제와 남한 등의 경제지원이 절실했습니다. 또 이미 보유한 핵무기를 지렛대로 미국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국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는 여러 성추문, 러시아 스파이 스캔들로 위기에 몰려있지요. 이 때문에 차기 대선의 바로미터라는 11월 6일 중간선거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하며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북한의 핵개발 능력이 예상보다 빨라지면서 미국은 전쟁이냐, 협상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로 몰렸지요.

그렇다면 북한의 핵 능력은 어떤 수준일까요. 흔히 ‘완전한 핵보유국’을 위한 중대한 문턱을 넘은 수준으로 평가 받습니다. 핵탄두 보유 숫자는 보통 20~30기 정도로 추정됩니다. 미국 국방정보국(DIA)은 지난해 7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758kg, 플루토늄 54kg가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죠. 약 60개의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양입니다. 특히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핵탄두 개발에도 성공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미국 서부까지 핵무기를 쏠 수 있다는 얘기지요.



결국 김정은과 트럼프는 협상장으로 나왔지만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들어갔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6월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제공’이라는 큰 틀에 합의하고도 협상 타결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비핵화(非核化·Nuclear disarmament)를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죠. 미국은 북한이 앞으로 개발 예정인 ‘미래 핵무기’는 물론 이미 보유 중인 ‘과거 핵무기’까지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이 종전선언과 같은 조치를 내놓으면 ‘미래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개발한 ‘과거 핵무기’의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죠.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서로 주고받는 방법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미국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조치를 이행한 뒤에야 평화협정 체결, 경제제재 해제와 같은 선물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지요. 북한이 과거 핵협상 때 당근만 챙기고 뒤로는 몰래 핵개발을 하는 바람에 뒤통수를 얻어맞았던 쓰라린 경험 때문입니다.

반면 북한은 단계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취할 때마다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반대 급부를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은 이미 미군 유해를 송환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습니다. 또 ICBM 엔진 개발이 이뤄진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도 폐쇄할 수 있다고 하지요. 하지만 미국이 종전선언을 해야 핵무기 생산의 핵심시설인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고 자신들의 핵무기 목록, 이른바 ‘핵 리스트’도 제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경제 제재도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어느 정도 해제돼야 한다고 주장하죠.

기본 방침에 합의하더라도 구체적인 협상 과정 역시 쉽지 않습니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말하지요. 북한이 ‘핵 리스트’를 제출해도 미국이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와 일치하지 않는다. 숨기려고 하지 마라”고 할 경우 북미간 신뢰는 한순간에 깨지겠죠. 핵 사찰 일정도 문제입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추정하는 북한의 핵 시설은 무려 100여곳. 10곳 가량이었던 리비아 핵 시설 사찰에 22개월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무려 18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처럼 북한과 미국이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안은 무엇일까요.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과 북한이 각각 ‘선(先) 핵 리스트 제출’과 ‘선(先) 종전선언’ 요구로 맞서지 말고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 폐기를 맞교환하자는 것이지요. 또 북한의 핵 리스트 제출은 뒤로 미루자고 제안합니다. 처음부터 핵무기 목록을 요구하면 이후 검증 방식을 놓고 협상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죠.

북미가 이 정도만 합의해도 문 대통령은 남북간 경제협력이나 대북 제재 해제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엔사와 주한미군은 그대로 유지하고요. 또 마지막 단계로 북한이 현재와 미래의 핵무기를 모두 폐기하며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질 경우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 한반도의 운명은 연말까지 남은 3개월에 달려있는 듯 보입니다. 북한과 미국이 IAEA 본부가 있는 빈에서 고위급 실무협상을 개최하기로 한 탓이지요. 또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전후해 2차 북미정상회담도 열릴 예정입니다. 과연 한반도에는 70여년만에 평화가 찾아올까요? 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통해 우리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박동휘기자 slypd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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