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피부과 전문의지만 보톡스나 필러 같은 주사 시술로 사람의 얼굴을 젊게 혹은 아름답게 만드는 의사다.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겠지만 사람을 더 아름답게, 젊게 해주는 것도 큰 보람이다. 우리 병원에는 예쁜 사람이 더 예뻐지려고 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덤으로 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다. 몇 년 전 진료실에 건강미 넘치는 20대 글래머 여인이 상담을 하러 왔다. 사실은 본인이 전년도 미스코리아인데 ‘예쁘지 않은’ 자신의 얼굴을 ‘시술’로 예쁘게 할 수 있는지가 상담의 요지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광대가 큰 얼굴이고 코가 넓은 편이라 주사 시술로는 해결하기 어려워 돌려보낸 적이 있다. 필러는 말 그대로 볼륨을 채워 골 진 주름을 펴고 꺼진 볼을 통통하게 하거나 작은 입술을 크게 하고 낮은 콧대를 높게 하는 것이지 큰 코를 작게 하거나 광대뼈를 줄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맨 얼굴이라 그런지 본인 말처럼 미스코리아라고 할 만한 대단한 미모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차라리 내 딸이 더 낫겠다는 ‘고슴도치 아빠’의 생각에 막내딸에게 올해 미스코리아 대회에 참가해보라고 권유한 것이다.
흰 피부에 큰 눈이나 오뚝한 콧날, 앵두 같은 입술, 날렵한 턱선 등 아름다운 얼굴의 정의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밸런스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개인의 개성을 무시한 천편일률적인 황금비율은 억지 주장이지만 얼굴 구성요소 간의 적절한 밸런스가 없다면 이상한 얼굴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학회에서 의사들에게 얼굴 밸런스의 중요성에 대해 강의를 할 때 앤젤리나 졸리의 얼굴을 변형한 사진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졸리의 눈·코·입을 크기만 작게 줄이면 여전히 매력적인 얼굴이 된다. 하지만 눈·코·입의 크기는 똑같아도 배열을 달리해 눈과 눈을 몰리게 한다든지 인중을 길게 하면 정말 추녀가 된다. 혹은 눈·코·입은 졸리의 원모습대로 두더라도 이마를 좁히고 턱을 작게 하고 광대를 크게 해 얼굴 윤곽의 밸런스를 흔들면 이 역시 이상한 얼굴이 된다. 이처럼 눈·코·입 구성요소 각각의 아름다움보다 전체적인 밸런스가 아름다운 얼굴의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 필자의 막내딸도 눈이 큰 전형적인 미인형은 아니지만 얼굴이 작고 계란형에 눈코입의 밸런스가 조화로운 동양적인 얼굴이라 다행히 고슴도치 아빠 신세를 면하게 해준 것 같다.
비단 밸런스가 얼굴의 아름다움에만 적용되겠는가. ‘과유불급(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이라는 말처럼 세상사 모든 일에 밸런스가 필요하다. 그래서 국민들이 좌에서 우로, 우에서 다시 좌로 10년 만에 정권을 넘겨준 것은 결과적으로 절묘한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정권은 아직도 적폐 청산에 정신이 없고 검증되지 않은 소득주도 성장으로 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으니 위정자들이 국민들의 균형감각을 조금이라도 배웠으면 한다.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이제 고마 해라. 마이 무웃다 아이가.’
토요칼럼 ‘明鏡止水(명경지수)’ 대신 앞으로 서구일 모델로피부과 원장님의 ‘醫窓漫筆(의창만필)’이 4주에 1회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서 원장은 서울대에서 박사까지 마치고 서울대병원 피부과 연구교수, 대한피부외과학회 부회장으로 있습니다. 우리나라 보톡스·필러 분야의 1세대 의사로 한국 피부과 의사로는 처음으로 의대생·전문의들을 위한 영문 교과서(Botulinum Toxin for Asians)를 세계 1위의 과학출판사인 스프링어네이처에서 출간해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기대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주신 월호 스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