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길 바이네르 대표./송은석기자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 이분들의 공통점이 뭔 줄 아세요. 바로 우리나라 화폐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죠. 제 꿈은 500년 뒤 이분들처럼 화폐 속 인물에 들어가는 삶을 사는 겁니다.”
‘행복 전도사’ 김원길(57·사진) 바이네르 대표는 사람들과 헤어질 때 “우리 모두 돈 속에서 만나요”라는 인사말을 즐겨 한다. 얼핏 들으면 ‘얼마나 돈이 좋으면 헤어질 때도 돈 얘기냐’는 생각이 들지만 이 말 속에는 그의 인생과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돈 속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돈만 많이 번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라며 “가치 있는 봉사와 나눔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길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웃어 보였다. ‘개똥철학’이라며 쑥스러워하지만 ‘훗날 돈 속에서 만나자’는 말은 스스로에게 인생 목표를 다시 한 번 다지는 ‘채찍’이자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김 대표는 연 매출 500억원의 국내 1위 컴퍼트화 업체 바이네르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이자 ‘구두 장인(匠人)’이지만 지속적인 사회 공헌활동으로 더욱 많이 회자되는 인물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해마다 5월이 되면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효도잔치를 연다. 벧엘의집·박애원 등 수많은 복지시설에 물품을 보내고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에게 해외 연수 기회도 제공한다.
경영학 교과서는 기업의 목적을 ‘이윤 극대화’로 정의한다. 더욱이 자수성가한 기업가일수록 누구보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잘 알기 때문에 돈에 대한 집착이 크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와 반대로 해마다 벌어들인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바쁘다. 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의 기부와 사회봉사 활동을 두고 ‘나중에 정치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깎아내리는 시선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송은석기자
시기와 질투를 받아가면서까지 나눔과 봉사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그의 입에서 나온 답은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컸다. “존경받으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 사람들을 만나면 십중팔구가 ‘사업이 그만큼 성장했으니 성공했다’면서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성공인가요. 저는 맨주먹으로 사업을 키워오면서 돈도 많이 벌어봤고 경쟁에서도 많이 이겨봤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었더라고요. 내가 번 돈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존경을 받으며 행복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에 대한 정의를 바꾼 계기는 20여년 전 우연히 읽게 된 미국 출신 유명 여배우 오드리 헵번의 편지글이었다. 그녀는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전쟁과 평화’ 등에 출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세기의 요정’으로 불리며 돈과 명예·성공을 모두 거머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녀는 상처투성이였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방황했고 결혼 생활도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두 아들에게만은 자신과 달리 행복할 것을 당부했다.
그녀는 죽기 1년 전 아들에게 유언 형식으로 남긴 편지에서 “기억하라. 만약 도움을 주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왜 손이 두 개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라고 썼다.
김 대표는 이 글을 읽는 순간 “팍하고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때 저는 회사를 설립한 후 성공하려고, 돈 벌려고 욕심이라는 욕심은 다 부렸던 시기였어요. 나쁜 독소 같은 욕심 덩어리를 심장에 차곡차곡 쌓아 걸핏하면 뒷골이 땅겼고 스트레스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도 가지 못하고 하루 세끼 제대로 풀칠하는 것이 인생 목표였는데 어느덧 변해 있었던 거죠. 제 손이 두 개라는 것을 발견하고 한참을 뜨거운 눈물을 흘렸죠.”
그날 흘린 눈물은 삶의 철학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김 대표는 “저의 한 손을 남을 돕는 데 쓰겠다고 결심한 후 지금까지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누고 살려고 노력하니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건강도 자연스럽게 좋아지고 사업도 덩달아 잘 됐다”고 힘줘 말했다.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송은석기자
그는 넉살 좋은 웃음과 선행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이웃집 아저씨 같은 존재지만 회사를 경영할 때는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주인의식이다. 이는 중졸 학력이 전부였던 그가 18세의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서울에 올라와 컴퍼트화 명가인 오늘날의 바이네르를 일궈낸 원동력이기도 하다.
“손재주가 좋아 스물둘 젊은 나이에 당시 제화업계 4~5위였던 케리부룩에 스카웃됐는데 생산라인에서 정말 열심히 구두를 만들었어요. 구두공이었지만 누구보다 주인의식을 갖고 일했죠. 그런데 이러다가는 20~30년 후에도 계속 생산라인에서 구두만 만들겠다는 생각이 드니 아찔하더군요. 바로 사장님에게 달려가 관리직에 배치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중졸 출신인 그가 당시 상업고 졸업자들이 주로 배치됐던 관리직을 요구하니 회사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김 대표의 근면 성실함을 알고 있던 사장은 그를 포장반(구두에 상표를 붙여서 박스에 담는 작업)으로 옮겨줬다. 몇 달 후 그는 완제품을 최종 검사하는 검수반으로 자리를 옮겼고 점차 관리자로서의 업무 능력도 몸에 익혔다.
시장조사 업무를 맡았던 1989년에는 동인천백화점에서 매출이 적었던 케리부룩 매장을 퇴출시키겠다고 통보하자 현장에 달려가 ‘왜 우리 매장이 나가야 하느냐’며 백화점 로비에 대자로 드러눕고 통곡한 것도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금강제화·에스콰이아·엘칸토 등 당시 경쟁업체들의 월 매출이 3,000만원 정도였는데 케리부룩은 600만원에 불과하니 나가달라고 하더군요. 백화점 영업 매니저를 찾아가 다른 업체들만큼 매출을 올려줄 테니 몇 달만 더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사장님에게 제품 홍보 전단지를 제작해달라고 했고 제가 직접 마이크를 들고 매장에서 판촉활동을 벌였어요.”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월 600만원에 불과했던 백화점 매출이 김 대표가 나선 후 1억1,000만원까지 올랐다. 이 일을 계기로 케리부룩은 롯데·신세계·뉴코아 등 서울 시내 백화점에 잇따라 입점에 성공했고 김 대표는 ‘영업의 달인’으로 불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김 대표는 케리부룩을 그의 ‘인생사관학교’라고 부른다. 김 대표는 “아무리 어려운 시기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면서 “지금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도 바로 주인의식”이라고 강조했다.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송은석기자
1990년 사표를 낸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밑천 삼아 1994년 바이네르의 전신인 안토니오 제화를 창업했다. 편안한 구두가 좋은 구두라는 신념을 갖고 굽이 낮고 넓으며 밑창이 푹신한 ‘컴퍼트화’를 만들면서 사업 기반을 잡았다. 2011년에는 컴퍼트화로 유명한 이탈리아 브랜드 ‘바이네르’를 인수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2015년 사명을 ‘바이네르’로 바꾸고 5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사업이 안정궤도에 올라와 있는 요즘 그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나눔과 행복의 가치를 공유하는 후배 사업가들을 양성하는 일이다. 지난해 경북대와 손잡고 오는 2026년까지 5억5,000만원을 지원해 ‘김원길 창업스쿨’을 운영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비즈니스 멘토로서 ‘세상을 아름답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나도 행복하게’라는 경영 철학을 갖춘 멋있는 사업가 10명만 기르는 것이 또 다른 꿈”이라며 “나비의 날갯짓처럼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오는 것처럼 지금의 내 도전이 미약하더라도 앞으로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해지는 사회가 될 수 있는 씨앗이 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약력 △1961년 충남 당진 △1984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제화부문 동상 △1994년 안토니오 제화 설립 △1996년 이탈리아 바이네르 한국 라이선스 판매권 체결 △2008년 중소기업인 국무총리상 표창 △2011년 바이네르 인수 △2012년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 표창 △2013년 아름다운 납세자상 △2018년 국립합창단 이사장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