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지대 찾는 부동자금 錢錢兢兢

투자자, 수익 추구서 '자금지킴이'로 전략 수정
'자금정거장' 단기채 펀드에 2조6,000억 밀물


김동연(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웨스틴호텔에서 스티븐 므누신(오른쪽 두번째) 미 재무장관과 회담을 하고 있다. 미국은 다음주에 환율조작국을 지정하는 환율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한국투자신탁운용 솔루션펀드

신한BNP자산 커버드콜 펀드 등

지수하락 방어상품에 뭉칫돈 쏠려

변동성 영향 적은 헤지펀드도 찾아

그야말로 투자 시계 제로다. 국내 증시가 연이틀 최저치로 폭락하자 증권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미국 금리 인상과 미중 무역분쟁으로 중국 등 신흥국 펀드 역시 올 들어 수익률이 죄다 마이너스일 정도로 심각하다.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미국과 일본마저 지난 11일 증시가 급락하면서 올해 수익률을 모두 토해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채권시장마저 자금 이탈이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자금 역시 올스톱이다. 은행에서 잠자는 돈은 늘어나고 돈의 유통속도는 통계 집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투자자들은 금리를 포기하고 은행 수시입출금 상품이나 증권사의 단기채에 그저 돈을 ‘보관’하면서 투자시기만 저울질한다. 넘치는 유동성에 투자가 일시정지된 상태라 자금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상황이다.



자금이 갈 곳을 잃었다. 몇 년 간 계속된 저금리로 시중에 유동성은 흘러넘치지만, 이들 자금을 흡수할 수 있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자금정거장인 단기채나 머니마켓펀드 등 단기상품에 돈을 보관하려는 수요만 늘고 있다. 단기채 시장은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3개월 사이에 6,000억원 가까이 유입됐다. 상반기까지 부동산 시장에 추격매수로 자금이 몰리는 듯 했지만 9·13대책으로 부동산으로 쏠리던 퇴로도 막혔다. 주식과 펀드 등 자본시장은 더욱 살벌하다. 국내 주식형펀드 연초 이후 수익률은 -12%에 달한다. 특정 종목 주식과 펀드 투자가 오히려 독이 되는 시대다.

돈은 은행에서 잠자고 펀드시장에서도 투자 대신 단기채 펀드에 정차돼 있다. 돈이 돌지 않는 것이다. 돈의 유통속도를 보여주는 통화승수율은 7월 기준 15.88배로 통계 집계 이후 사상 최저치다. 장롱 속에 잠자고 있는 돈이 가장 많다는 얘기다.

그동안 아파트 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린 장본인 중 하나는 시중의 부동자금이었다. 9·13대책 이후 주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속도는 눈에띄게 둔화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8월12일부터 9월12일까지 전국 아파트 거래 총액은 22조8,300억원인데 9·13대책 이후 이달 12일까지 한 달간 거래 총액은 3조8,000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거래 총액도 8조3,000억원에서 4,183억원으로 20분의1 토막났다. 한국은행이 이르면 10월과 11월 금리인상에 나선다면 부동산 시장은 지금보다 더 한기가 돌 것으로 보인다. 자금흡수처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투자 행방도 달라지는 모습이다. 투자자들은 이제 ‘수익률 몇%’가 아니라 내 자금이 안전한지가 더 중요해졌다. 내 돈을 지키면서도 적재적소 투자처가 생기면 바로 현금화하겠다는 것이다. 수익 추구에서 ‘자금 지킴이’로 전략을 수정하는 모습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8월 말 ‘한국투자코스피솔루션증권투자신탁’을 내놓았다. 베트남펀드·한국형4차산업펀드 등 특정 지역과 종목으로 히트 쳤던 한국투신이 3년 만에 출시한 지수방어형 상품이어서 화제를 낳기도 했다. 투자상품 암흑기에 출시해 한 달여 만에 350억원을 모았는데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락기 방어 상품인 신한BNPP커버드콜펀드에도 3개월 새 90억원 가까이가 몰렸다.박석현 KTB투자증권 매크로팀장은 “단기채에 올들어 3조 가까운 자금이 몰리는 것은 투자라기보다 단기안식처 역할에 가깝다”면서 “신박스권 시대에 미국 연준의 매파적 성향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된데다 부동산시장도 이를 흡수하지 못하면서 자금이 부표처럼 떠다니는 현상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보리·한상훈 기자

boris@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