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95억원에 낙찰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콰란타니아’. 1947~53년에 만들어진 원작을 1983년에 제작한 작품이다. /사진제공=서울옥션
지난 1일 홍콩에서 있었던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는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의 작품 ‘콰란타니아(Quarantania)’가 6,700만 홍콩달러에 팔렸다. 한화로 약 95억 원, 국내 경매회사가 거래한 조각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5,000만 홍콩달러로 시작해 6,700만 홍콩달러까지 올라가 판매됐으니 수수료까지 포함하면 약 113억원이다. 경매 시장에서 거래된 부르주아의 작품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앞서 지난 2015년에는 역시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1993년 캐스팅된 에디션 6개의 청동 작품 중 하나인 또 다른 ‘콰란타니아’가 3,6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기존의 양식이나 사조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작품세계로 20세기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2010년 뉴욕에서 사망할 때까지 꽉 채운 100년의 생애 중 60여 년간 작품활동을 하며 대규모 조각과 설치 작품뿐 아니라 많은 수의 회화와 종이작업, 그리고 판화들을 만들어냈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Spider)’는 지난 201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2,800만 달러, 한화로 약 320억원에 거래돼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현재까지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은 1996년에 만들어 1997년에 캐스팅된 ‘거미(Spider)’로 2015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약 2,800만 달러에 거래됐다. 이후 그녀의 작품은 거래량과 총액 모두가 상승하는 추세다. 2016년 이후 거래된 부르주아의 작품 총액의 90%는 조각이 차지해 작가의 시장을 조각이 주도하고 있는 모습인데, 역시 경매 거래가 기준 상위 10점 가운데 8점이 ‘거미’ 시리즈, 그리고 2점이 ‘콰란타니아’ 시리즈의 조각 작품이다. 그리고 그중 1997년작 ‘거미 IV’는 2013년에 약 700만 달러에 거래됐다가 같은 작품의 또 다른 에디션이 지난해 1,500만 달러 가까이 거래됐다. 4년 만에 2배 이상 뛰어오른 시장에서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준다. 아트 바젤과 UBS가 공동으로 발행한 ‘2018 아트마켓 리포트’에서도 부르주아는 2017년 연간 거래금액 기준 시장 점유율 0.6%로 19위에 올랐다. 전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0명의 가장 잘 팔리는 현대작가 명단에 여성 작가로는 야요이 쿠사마 외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연작은 2013년 경매에서 700만 달러에 낙찰된 것이 2017년에 1,500만 달러에 거래되는 등 가파른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콰란타니아’는 1947년부터, ‘거미’는 1996년부터 제작했으니 이들은 시기적으로 약 50년의 차이를 두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1938년 미국인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해 뉴욕으로 이주한 부르주아는 아트스튜던츠 리그(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조각과 판화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1940년대에 ‘페르소나주(Personnage)’ 시리즈를 시작했다. 프랑스어로 ‘인물’을 뜻하는 제목처럼 이 시리즈는 떠나온 고향의 그리운 사람들을 의인화한 것이다. 1940년대는 중년의 부르주아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며 뉴욕의 미술계에 진입하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전시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힘든 시기였다. 이때 버려진 나무 등을 이용해 제작한 세로로 긴 형태의 목조각들은 1949년 페리고갤러리(Peridot Gallery)에서의 첫 개인전에서 개별적인 작품으로 전시됐고, 이를 후에 조합해서 만든 작품이 바로 ‘콰란타니아’이다. 목재로 제작된 원본은 현재 뉴욕 MoMA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작품은 1982년 MoMA 회고전 후 뉴저지에 있는 브론즈 공방에서 1983년 캐스팅해서 제작한 것으로, 이때 제작된 브론즈 작품들은 모두 그 구성이 조금씩 달라 각각 개별성을 갖는다. 바늘을 연상시키는 수직적인 다섯 개의 형상이 모여 있는데 각각의 형태는 타피스트리를 가업으로 했던 가족으로, 그리고 세 개의 작은 주머니 형상을 달고 있는 가운데 형상은 세 아들들과 남편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어머니이자 부르주아 자신으로 해석된다. 이는 부르주아 초기 조각의 대표작이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는 지난 2000년 영국 런던에 개관한 테이트모던의 터바인홀 전시를 위해 초대형으로 제작됐고 한 번 더 주목 받았다.
‘거미’는 그로부터 약 50년 후인 1990년대, 그녀의 나이 80대 중반에 제작됐다. 모성을 품은 거대한 청동거미 조각인 이 시리즈 중 가장 큰 것은 프랑스어로 엄마를 뜻하는 ‘마망(Maman)’으로 불리는데 높이가 9m가 넘고 철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총 6개의 브론즈 에디션이 캐스팅돼 삼성미술관 리움을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 설치돼 있다. 부르주아는 이 작품을 2000년 영국 국립미술관 성격의 테이트모던 개관 당시 커미션 작업으로 제작했는데, 이후 대표작품으로 인정받으며 그녀의 국제적인 명성을 높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세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난 부르주아는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바로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던 권위적인 아버지로 인해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았고, 이렇게 어린 시절 경험한 상처와 증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연민 등의 감정은 평생 부르주아의 예술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지속적인 원동력이 됐다. 부르주아는 가장 좋은 친구였고, 현명하고 인내심 많았으며 따뜻하면서도 합리적이고 보호해주는 존재였던 어머니를 상징하는 의미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알 주머니를 소중히 품은 거대한 모성의 상징인 ‘거미’, 그리고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으면서도 허리에 고정시킨 주머니들을 보호하고 있는 ‘콰란타니아’는 엄마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이라는 관계, 어머니의 위대한 모성에 대한 오마주로 읽힌다. 그리하여 그 형태와 제작 시기에 있어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는 하나의 고리로 묶인다. 그리고 부르주아는 이러한 일관성으로 자전적인 주제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표현하며 평생 마치 강철과도 같이 단단하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로서의 예술의 길을 걸어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서울옥션 국제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