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똥은 2010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군사·경제적으로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회귀전략(Pivot to Asia)’을 내세우고 2010년 ‘리메이킹 아메리카’를 구호로 제조업 부흥을 시작했다. 관세 폭탄은 미국 제조업 육성을 위한 무기 중 하나다. 한 철강 업체 고위관계자는 “중국산 철강에 최대 522% 관세 폭탄을 때려 시장에서 몰아낸 후 대체 수요를 채우던 한국 철강에 칼을 겨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악몽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재앙으로 바뀌었다. 오바마는 기존 세계무역기구(WTO)와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리고 여러 나라를 묶는 다자간 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랐다. 자국 이익을 침해하는 모든 무역관계를 다시 구성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 속에도 2015년 ‘제조 2025’로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전폭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오는 2045년 세계 최강 산업 대국인 미국을 제치겠다는 게 골자다. 이를 보던 트럼프는 중국 전체 수입품의 절반에 달하는 2,500억달러 규모에 대해 관세(10%·2019년 25%)를 투하했다. 중국이 “굴복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주요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은 본격적인 패권 경쟁에 돌입한 상황이다.
미중 패권 전쟁의 쓰나미는 우리 주력산업을 집어삼키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뿐 아니라 대미 무역에서 흑자를 내는 모든 국가와 무역관계를 수정하고 있다. 관세 폭탄에 더해 사문화됐던 무역확장법 232조로 철강 대미 수출량을 2015~2017년의 70%로 제한한 쿼터를 씌운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포구를 이제 자동차로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의 자동차 부문을 유리하게 뜯어고치고 무역확장법으로 최대 25%의 관세를 매길 준비를 하고 있다. 자동차는 완성차(약 18만명)와 협력사(약 21만명), 운송·정비·판매 등 유관 산업(130만명) 등 약 160만명 이상의 일자리를 책임지는 국내 최대 산업. 관세가 현실화되면 파국을 피할 수 없다. 국제무역연구원은 25% 관세를 맞으면 한국산 현대차의 현지 소비자가격(평균 2만2,025달러)이 최대 15.8~23.9%(3,476~5,267달러) 뛸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현지 생산 현대차(평균 2만1,229달러)는 최대 11.1%(3,025달러)만 오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관세가 10%만 올라도 수출 경쟁력을 잃는다”고 말했다. 자동차도 현지 생산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수출액은 22.7%(약 16만대)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대미 자동차 수출액(약 161억달러) 가운데 36억달러(약 4조1,000억원)가 증발하는 것이다. 취업유발계수(10억원당 취업자 8.6명)를 고려할 때 약 3만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문병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자동차·부품을 합치면 전체 수출 중 미국 비중이 33%를 넘는다”며 “어떻게든 관세는 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악은 미중이 보호무역 수위를 높이면서 동시에 경기가 하강하는 것이다. 우리 수출에서 중국(24.8%·2017년 기준)과 미국(11.9%)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교역이 줄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우리 수출도 함께 줄어드는 구조다. 무엇보다 두 나라의 최종 목적은 자국 산업 육성이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첨단산업 육성을, 미국은 법인세 인하(35%→21%)로 기업을 자국으로 되돌리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서 국내 최대 수출산업인 반도체도 사정권에 들어가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 지원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무역 보복이 자동차를 넘어 반도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패권 경쟁으로 재편되는 세계 산업 질서에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 산업의 기반이 붕괴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도훈 경희대 특임교수(전 산업연구원장)는 “미국은 관세 폭탄과 동시에 법인세 인하로 기업을 유치할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며 “우리는 법인세 인상과 고용 경직성, 과도한 규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살기 위해 나가는 기업을 못 막고 우리 산업의 토대는 더 허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