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거리 특화 항공사를 지향하는 ‘에어 프레미아’ 설립의 주역인 김종철(왼쪽 두번째) 최고경영자(CEO), 박혜란(왼쪽) 브랜드 실장, 이응진(오른쪽) 법무IR 총괄, 김철환 기술융합 총괄이 에어 프레미아의 항공기 모형을 배경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호재기자
‘항공산업’과 ‘스타트업’.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는 단어다. 지금까지 항공사라고 하면 주로 대규모의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하는 사업으로 인식돼왔다. 또 스타트업은 주로 자본력이 약한 20~30대 젊은 층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는 인터넷 기반의 비즈니스라는 인식이 강하다.
중장거리 특화 항공사를 지향하는 ‘에어 프레미아’는 항공산업과 스타트업에 대한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항공 분야의 스타트업이다. 에어 프레미아의 비즈니스 모델은 간단하다.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020560) 등 양대 대형 항공사와 최근 크게 성장하고 있는 저비용항공사(LCC)의 틈새를 뚫는 전략이다.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고 교포와 유학생이 많아 비행시간 5시간이 넘는 중장거리 수요가 많지만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특히 에어 프레미아는 가격 대비 넓은 좌석을 제공하는 ‘프리미엄 이코노미’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에어 프레미아는 이르면 올해 말 국토교통부에서 항공사 신규 면허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오는 2020년 7월께 첫 비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최근 에어 프레미아 설립의 주역인 김종철 대표를 만나 에어 프레미아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에어 프레미아 사무실이 들어선 서울 을지로의 스타트업 성지로 불리는 공유 오피스 위워크에서 진행됐다.
에어 프레미아가 세간의 눈길을 끄는 이유는 기간산업에 도전장을 던진 스타트업이라는 점이다. 김 대표는 “애플리케이션이나 게임을 만드는 것만이 벤처는 아니다”라며 “기간산업 중에서도 비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분야에 항상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제주항공(089590)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항공산업의 비효율성과 문제점을 직접 경험하고 해결 방안을 찾은 바 있다. 특히 근래 들어 진입 장벽이 높은 항공산업에서 시장지배자인 대형 항공사들의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경영 행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으며 이는 고객 불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기간산업이라는 거대하고 고착화한 산업 구조 안에도 혁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혁신으로 항공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시장에 제시하고 고객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객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이 아니라 타고 싶은 항공사를 만들겠다”며 “티켓을 파는 것이 아니라 여행의 설렘을 파는 항공사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진입 장벽이 높은 항공 분야에서 에어 프레미아가 자신 있게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는 배경의 하나는 최근 혁신에 투자하는 다양한 돈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과거에는 큰돈을 가진 정부나 재벌들만 기간산업에 투자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벤처캐피털이나 사모투자펀드(PEF) 등 혁신에 투자하는 큰돈이 많아졌다”며 “좋은 아이디어와 최적의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면 투자자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어 프레미아는 초기 납입 자본금인 370억원을 확보한 것은 물론 향후 투자 의향을 밝힌 자금도 700억원 이상 확보하고 있다.
에어 프레미아 설립에 참여한 주역들이 그간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쌓아온 탄탄한 실력과 네트워크도 항공산업의 높은 진입 장벽을 뚫을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 출신으로 제주항공 CEO를 지냈으며 현재 KAIST 교수를 맡고 있다. 이응진 법무IR 총괄은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이자 과거 참여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씨가 설립한 사모펀드 운용사인 스카이레이크에서 부사장을 지내면서 다수의 투자자와 기업을 경험했다. 박혜란 브랜드 실장은 SK텔레콤 브랜드전략실장, 초대 인천시 브랜드담당관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항공사들과 차별화되는 에어 프레미아만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또 김철환 기술융합 총괄은 바이오제닉스·이미지앤머터리얼스를 직접 창업했으며 카이트창업가재단을 설립해 50여개가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에어 프레미아가 항공산업뿐 아니라 침체기에 빠진 한국 산업의 전반에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항공·철강·조선·자동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간산업들이 현재 비효율성과 중국 등 경쟁국에 밀려 위기에 봉착해 있다”며 “에어 프레미아가 기간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