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만 축내는 文정부 위원회]13개委 위원만 375명+α..."무리한 정책 던져놓고 책임도 안져"

청와대·정부 인사 절반…민간위원도 '편향 논란' 되풀이
위원들 위원회 중복 참여·깜깜이 예산편성 등 문제 수두룩
"예비비까지 쓰며 정부·기업 위 군림..정책혼란 가중"비판

지난달 6일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현판식에서 특위 위원장인 홍장표(왼쪽 세번째)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동연(오른쪽 세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장하성(〃 두번째) 청와대 정책실장 등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다.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 6명도 청와대 통상비서관·외교정책비서관과 기획재정부·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행정안전부 등 4개 관계부처 차관이다. 민간위원을 임명할 계획은 당분간 없다.

9월 초 정식 출범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도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맡았다. 총 위원 28명 중 24명이 민간위원이기는 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한국노동연구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 국책연구원 소속이거나 시민단체·학계 중에서도 정부 자문에 자주 응하는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다른 신설 위원회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자리위원회는 위원 29명 중 15명이 청와대 일자리수석과 관계부처 장관(11명), 정부출연 연구기관장(3명)이다.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정부 정책수립 과정에 새로운 시각을 반영하기 위한 정부 위원회의 본질과는 벗어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가 민주주의적 절차와 공론화를 중시하겠다는 명분으로 온갖 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실상은 보고할 곳이 하나 더 늘었을 뿐”이라면서 “오히려 위원회 이름으로 무리한 정책을 던져놓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뒷바라지할 일만 늘었다”고 토로했다.


‘옥상옥’ 지적을 받아온 정부의 각종 위원회가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범람하면서 정책 혼란을 키우고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15일 행정안전부와 각 위원회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신설 또는 확대 개편된 정책 관련 위원회 13곳의 위원만 375명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산하 정책운영위원회 및 분과위원회 위원 107명 등 산하조직 위원이나 위원회를 전담 지원하는 사무처 인력은 제외한 수치다.


‘375명’이라는 숫자에는 허수도 많다. 우선 당연직 신분으로 여러 위원회에 중복 참여하는 청와대·정부부처 관계자가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당정청 협의나 관계장관회의 등 기존 정부 내 협의체와 역할이 겹친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에 따라 폐지됐던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4차산업혁명위의 존속 이유조차 불분명해진 것이다.

민간위원도 편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주로 친여 성향의 인사들이 참여하면서 위원회의 역할이 사회적 합의 도출보다는 한쪽 이념에 치우친 정책 대안을 ‘간 보듯’ 내놓는 것이 됐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3월 대통령에게 제출한 개헌 자문안에 토지공개념 강화와 근로자 추천 이사제 등을 담으면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개헌안을 내놓았다”는 비판만 샀다. 재정개혁특별위원회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조세소위 회의에 참석했을 때 위원장을 제외한 대부분 위원들의 이념적 편향이 너무 강해 균형 있는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깜깜이’ 예산 편성이다. 정부는 올해 들어서만 정책기획위 밑에 4개의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각기 예산·조세정책 개편, 개헌, 소득주도 성장 등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을 다루는 위원회지만 정식 위원회가 아닌 ‘위원회 속 위원회’ 형식을 택했다. 별도 입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데다 정부가 공식 집계하는 정부 위원회 수에서 제외돼 ‘난립’한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 편성도 쉽다. 국회를 거치지 않고 예비비를 가져다 쓰거나 이·전용으로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

실제 정책기획위의 경우 지난해 본예산에서 정책위 본위원회 예산만 39억5,600만원을 배정받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4개 특위가 줄줄이 생기면서 재정특위(30억6,200만원), 신남방특위(16억8,600만원), 국민헌법자문특위(28억500만원), 소득주도성장특위(19억5,100만원)가 예산을 새로 받았다. 이 특위들은 존속기간도 불분명해 내년 예산도 알 수 없다.

다른 위원회도 올해 예산 집행 과정에서 원래보다 예산이 더 늘었다. 본예산 43억7,000만원을 배정받았던 4차산업혁명위는 올 8월 기준 예산현액이 46억4,300만원으로 6.7% 늘었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28억5,200만원에서 31억7,800만원으로 11.4%나 늘었고 국가교육회의(32억3,900만원)도 3.9% 증가했다. 이렇게 예산을 수백억원 가져다 놓고도 실제 예산집행률은 46%에 불과했다. 13개 위원회의 예산 436억9,800만원 중 올 8월까지 201억1,300만원만 집행됐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는 “정책 복잡성이 높아질수록 행정부는 많은 위원회를 만들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며 “권한과 책임이 연동하는 것이 가장 좋은 조직 형태인데 각종 위원회가 난립하면서 책임질 사람이 사라지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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