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미중 무역전쟁 타결 가능성 대비를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통상법 전공>
양국 정치 대립속 경제 공생관계
내달 G20회의서 대타협 할수도
지재권 산업 육성 기회 활용 등
통상이슈서 최대한 실리 챙겨야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은 올해 초 개시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서 환율 문제를 협상 초기부터 거론하며 압박을 가했다. 그 결과 재협상 타결의 후속조치로 외환시장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개입 여부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정보제공 시스템을 구축하게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지난달 30일 캐나다·멕시코와 전격 합의한 USMCA(북미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정)에 ‘환율 개입을 포함한 경쟁적 통화가치 절하를 자제한다’는 조항을 관철했다. 현재 일본과 진행하고 있는 상품분야자유화협정(TAG) 협상에서도 환율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트럼피즘이 환율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하다. 관세보복을 당하는 외국 정부가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해 대미 수출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미국발 관세보복 정책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기에 관세보복 정책의 효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환율에 대한 외국 정부의 개입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실제로 미중 무역전쟁 후 위안화 통화가치가 달러 대비 10% 넘게 떨어졌다. 미국은 중국이 위안화 가치 하락을 의도적으로 유도해 무역전쟁의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국영 무역기업들이 미국시장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액수의 달러를 중국으로 유입시키지 않고 미국 부동산이나 국채 매입으로 해외 ‘파킹’함으로써 위안화 가치의 지속적 하락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것이 중국이 대미교역 흑자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데 기여했다는 분석은 트럼프 대선캠프의 핵심 논리였다.


이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초강수를 둬 미중 무역분쟁을 환율전쟁으로 이끈 후 신플라자합의로 마무리하는 수순까지 가능한 정책수단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번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트럼피즘이 언제든지 꺼내 들 카드라는 것이다. 지난 1980년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이 프랑스·독일·일본·영국과 재무장관 회의를 개최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는 ‘플라자합의’를 이끌어낸 시나리오 말이다. 양국 모두 경제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1980년대 냉전체제에서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던 일본을 굴복시켰듯 미국이 지금의 중국을 굴복시킬 수도 없다. 1990년대 소비에트의 몰락과 같이 스타워즈·군비경쟁 같은 방식으로 중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 조건도 아니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과의 전면전을 지속할 상황에 있지도 않다. 감세조치와 재정 악화로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양적 완화를 하고 국채를 발행할 때 이를 가장 많이 사줄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으로서도 미국에 강대강 전면전으로 맞서기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구상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세대가 아닌 2세대 태자당 출신이고 원로세대의 뒷받침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은 시 주석이 정통성을 창출하는 길은 경제 발전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거두는 일이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 안정과 우호적 대외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차라리 환율전쟁 위협까지 미국이 꺼낼 수 있는 카드들을 몽땅 꺼내게 내버려둔 후 중국이 들어줄 수 있는 카드를 고르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카드를 많이 꺼내면 꺼낼수록 일종의 클라이맥스 효과는 커지게 돼 중국이 일부를 양보하더라도 국내정치적 수용 가능성은 높아지게 된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정치적으로 대립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한 몸과 다름없는 적대적·경쟁적 공생관계에 있다. 따라서 다음달 말 개최되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 간에 극적인 협상 타결이 이뤄질 가능성은 있다. 타협안의 골자는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 폭을 30% 이상 대폭 줄이고 미국산 자동차·반도체·항공기 및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며 기술유출 문제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에 합의하는 선이 될 것이다. 대내적 지지율 확보에 비상이 걸린 트럼프 대통령에게 극적인 정치적 선물을 안김으로써 통상 및 환율 전쟁 국면을 벗어나는 대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

중국이 의도적으로 미국산 구매를 늘리면 우리 제조업의 대중국 수출에 대체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또 중국이 의도적으로 대미 수출액을 축소하게 되면 중국의 수출품에 중간재 형태로 들어가는 반도체와 철강 등 기초소재 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위안화 강세에 따른 우리의 대중 수출 경쟁력 약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반면 미국의 압력으로 중국 서비스 시장이 개방돼 제도적 투명성이 제고되고 지재권 보호가 강화되면 우리 관련 산업들도 더불어 혜택을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연관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키우고 서비스 및 지재권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북핵 및 안보 문제 해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종속변수로 미국과 중국과의 통상 이슈를 처리해버리는 것은 21세기 실리외교에서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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