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18일 서울경제신문 주최로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15회 서경 금융전략포럼에 기조강연자로 참석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최근 들어 금융발전과 경제성장은 함께 간다는 보편적 인식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난 2015년 연구 결과, 또 국내의 박정수 서강대 교수 등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금융이 양적으로 성장할수록 실물경제는 역성장하는 모습이다. 이제는 금융의 양적 성장 대신 질적 성장이 강조되는 이유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1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서경 금융전략포럼에 참석해 이 같은 학계의 논의를 언급하며 우리나라 금융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윤 원장은 우리 금융이 양적 면에서는 뛰어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은행·자본시장·보험·카드 등 모든 금융업권은 뛰어난 수준이다. 윤 원장은 “국내 은행 은행계좌 기준 총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2,364억원으로 지난 18년간 3배 가까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자본시장 규모는 같은 기간 기준 1,893조원이며 상장사 수는 2,194개로 세계 8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보험도 보험료 기준으로 세계 5위를 기록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험료를 나타내는 보험침투율도 세계 5위”라며 “카드업권 경우 경제활동인구 1인당 3.6개의 신용카드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금융업권별 현황 등을 종합해 평가해보면 우리나라 금융 수준은 세계 6위다. 윤 원장은 “한국의 IMF 금융발전지수는 0.85로 세계 6위인데 이는 우리 경제 규모가 12위인 데 비해 금융 분야가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산업에 대한 평가항목에 설문 등 정성평가가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조사한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순위는 지난 2016년 기준 80위로 금융권은 “아프리카의 국가 우간다(77위)보다 못한 나라”라는 오명까지 생겼다. 다만 최근 언론보도에서 알려진 것처럼 WEF가 올해부터 평가를 할 때 설문 비중을 축소하는 등 평가기준을 변경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지난해 74위에서 올해 19위로 가파르게 올랐다. 그럼에도 이는 12위 경제 규모에 비해 뒤처진다고 윤 원장은 꼬집었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중 금융 부문 순위는 올해 기준 33위로 더 낮다.
이어 윤 원장은 “(국제기구들의) 양적 평가는 대체적으로 우수하지만 질적인 평가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질적 성장이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를 네 가지 부문에서 얘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금융성장이 실물성장을 견인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박 교수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금융발전 정도를 말하는 총금융심화도(총금융자산/GDP)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상승세지만 1인당 실질 GDP 성장률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이 양적 성장을 하지만 실물성장까지 견인하는 질적 성장은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외에도 윤 원장은 우리 금융의 소비자 보호와 기술 혁신성이 모두 뒤처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저축은행 사태, 키코(KIKO) 사태, 동양 사태 등을 겪으며 소비자 보호에 충실하지 못했다”며 또한 “국내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정부에서 대부분 하고 금융사의 R&D 투자 규모만 놓고 보면 미국의 800분의1인 500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18일 서울경제신문 주최로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15회 서경 금융전략포럼 참석자들이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기조강연을 듣고 있다. /이호재기자
윤 원장은 이어 금융의 질적 성장 방향 및 그에 맞는 금감원의 감독 방향을 은행·비은행, 자본시장, 보험, 기술혁신 등 네 가지 범주로 나눠 설명했다. 우선 은행·비은행 부문의 기업대출 확대다. 윤 원장은 “금융위기 이후 가계대출에 치우치자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기업대출 등 생산적 부문으로 금융자금 공급을 확대하고 자영업자 및 중소기업 경쟁력도 강화하는 감독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시장 부문에서는 혁신성장 지원과 공정한 시장 조성을 윤 원장은 강조했다. 증권사 수익 구조에서 위탁매매가 전체의 51%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투자은행 등은 그 비중이 작은 만큼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해 증권사가 기능을 확충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어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불공정거래 근절을 주요 감독과제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보험 부문 질적 성장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소비자 권익 보호다. 윤 원장은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는 2014년 기준 4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며 “2016년 기준으로 보험소비자 만족도 평가를 보면 만족한다는 답변이 34%로 중국·인도·아르헨티나 등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기술혁신에 있어서는 “소비자 보호와 시스템 리스크만 잘 관리할 수 있다면 핀테크 분야를 감독당국은 적극 도와야 한다”며 ‘핀테크 친화적인’ 규제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끝으로 윤 원장은 “규제를 없애야만 금융 산업이 발전한다는 생각은 조심해야 한다”며 “시장이 변하는 것에 따라 규제가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 금융당국과 시장 간 소통이 중요하다”고 마무리 지었다.
/손구민기자 kmso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