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희 보스턴컨설팅그룹 아태유통부문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서경 금융전략포럼 ‘금융, 새 성장공식을 찾다’에서 주제 강연을 하고 있다./송은석기자
“금융의 신성장 공식을 전통적인 금융영역에서만 찾는 것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김연희 보스턴컨설팅그룹 아태유통 부문 대표의 경고는 엄중했다. 김 대표는 1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서울경제신문 주최 금융전략포럼에서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하고 있다”며 “미국의 금융그룹인 캐피털원이나 골드만삭스·JP모건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통의 금융회사들 모두가 디지털 기업의 DNA를 접목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TWC(Talent, Way of Working and Corporate Culture)-금융업의 신성장 DNA’이라는 강연주제를 내걸고 “국내 금융기관들도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국내 금융사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싸우는 테크놀로지 기업이라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지금은 테크놀로지를 모르고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DNA)’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왔다”는 말도 했다.
국내 금융사들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ICT 기업 조직의 특성을 따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디지털 기업의 4가지 특징은 고객지향 서비스를 극대화한다는 점과 한가지 서비스를 중심으로 모든 기능조직이 달라붙는 애자일(신속한) 조직구성, 수평적 조직과 업무공간, 직원의 잠재력을 무한히 끌어올리기 위한 상시평가와 보상체계를 꼽았다.
우선 조직의 변화와 관련, 그는 “설립 20여년 만에 미국을 대표하는 금융회사로 성장한 캐피털원은 이미 디지털 부서 내에 기획자, 사업담당자, 디자이너, 개발자, 데이터 분석가 등이 포함된 애자일 조직을 구축한 뒤 이를 조직 전체적으로 확대하려는 분위기”라며 “이러한 형태가 활성화될수록 고객의 이용 경험에 기반한 서비스 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물류업체의 선두주자인 쿠팡의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고객이나 시장반응을 즉각 인지하고 서비스에 반영하는 애자일팀을 서비스별로 30개팀씩 편제해놓고 있다”며 “국내 금융회사가 벤치마킹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상시평가와 보상체계 업그레이드도 주문했다. 그는 “직원 각자에게 여신, 신용카드 판매 등 할당량을 내리고 영업성과에 근거해 보너스를 주는 것은 제로섬 방식으로 테크놀로지 회사 DNA와 맞지 않는 방식”이라며 “직원 개개인이 무엇을 잘하고, 하고 싶어하는지를 파악한 뒤 이들이 성과를 내도록 적극 지원하는 사고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특정 서비스나 상품이 큰 성공을 거두면 기업 가치가 수십, 수백 배가 커지는 게 테크놀로지 기업의 속성인 만큼 전통적인 톱다운 방식의 성과 측정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조직의 목표달성을 위해 조직원을 일사분란하게 만드는 게 성과평가 체제의 목표였다면 이제는 개별 조직원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지원개념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ICT 기업처럼 직원들이 소위 대박을 낼 수 있도록 개인의 잠재력을 무한히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성과보상 체계를 고쳐야 한다며 “더 자주, 더 다양한 의견을 기반으로 조직원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국내에서는 강성노조와 경직된 노동시장이 이 같은 성과보상을 통한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 가장 큰 핸디캡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성과 평가와 업무에 대한 피드백 등 동료 직원들의 리뷰를 구분한 뒤 리뷰 비중을 대폭 높여 직원의 성장을 돕는 페이스북·넷플릭스 등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전통적인 인사관리의 대명사로 불렸던 GE조차도 직원들이 전용 애플리케이션에 각자 목표를 적으면 상시 피드백을 해주는 구조를 만들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국내 금융회사의 성장을 발목 잡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다. 김 대표는 “금융의 신성장은 전통의 금융에서만 찾으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금융이 새로운 크로스오버(교차혼합) 비즈니스를 장착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정보를 활용하는 길을 원천 차단하고 있는 국내 규제 실태에 대해 김 대표는 “외국에선 고객정보를 사고파는 일이 가능하지만 국내에서는 금융지주 내부에서도 불가능하다”며 “특히나 비금융 자회사는 어떤 것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금융이 성장하는 데 가장 큰 핸디캡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금융당국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신사업 진출 등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김 대표는 강하게 지적했다. 그는 “한 금융회사와 디지털 분야 신사업을 공동으로 기획했는데 현행법에서는 비금융 자회사 설립이 불가능해 모두 무산됐다”며 “국내외 ICT 기업들이 금융 분야로 자유롭게 진출하는 것을 고려하면 국내 금융회사들은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