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코스프레를 한 시위자들이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사망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DC=AF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20일(현지시간)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사망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암살이 아닌 우발적인 주먹 다툼 중에 숨졌다고 발표한 데 대해 사우디에 우호적인 미국과 일부 아랍권만 호응했다.
반면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유럽 주요 정부는 의심을 거두지 않으면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라고 압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 검찰의 초동수사 결과가 나온 19일(미 동부시간) “이는(사우디의 수사 결과는) 크고 바람직한 첫걸음”이라며 “사우디의 발표를 신뢰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사우디가 미국이 이란에 맞서는 데 중요한 나라이며 미국의 무기를 사들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네바다 주 방문 중 ‘사건에 연루된 사우디 관리들의 경질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아니다. 우리가 답을 찾아낼 때까지는 만족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그건 크고 훌륭한 첫걸음”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특히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사건 정황을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대(對) 사우디 무기 수출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가 1,100억 달러(125조 원) 상당의 무기를 구매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뒤 “그건 100만개 이상의 일자리다. 그런 주문을 취소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제재를 포함해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중동 내 맹방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이집트를 비롯해 지부티, 예멘,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도 20일 사우디의 수사 결과를 ‘정의’라고 옹호하면서 투명한 수사와 후속 조치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잇달아 냈다.
UAE와 바레인, 이집트는 지난해 6월 사우디가 주도한 카타르와의 단교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한 나라다.
역시 사우디가 주축인 이슬람협력기구(OIC)와 걸프협력회의(GCC)도 사우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유럽 국가들과 국제기구의 시선은 냉랭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일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과 함께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이번 사건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이번 사건과 관련한 정보가 불충분한 만큼 카슈끄지의 사망과 관련한 상황에 대해 사우디의 투명성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마스 장관은 이어 공영방송 인터뷰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우디로의 무기 수출에 대해 긍정적인 결정을 내릴 이유가 없다”며 미국과 달리 무기 수출을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영국 정부는 이날 “카슈끄지의 사망은 끔찍한 일로, 책임자가 처벌받아야 한다”며 “사우디 정부의 발표와 우리의 다음 조처를 숙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 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도 성명을 내 “카슈끄지 사망 인정은 진실 규명을 향한 첫걸음”이라면서도 “그러나 많은 의문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투명한 조사를 요구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카슈끄지 사망에 대한 신속하고도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유엔 대변인이 전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