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왼쪽) CJ그룹 회장이 우승을 차지한 브룩스 켑카에게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2타 차 리드 속에 맞은 마지막 18번홀(파5). 브룩스 켑카(28·미국)는 폭발적인 드라이버 샷을 앞세워 2타 만에 가볍게 볼을 그린에 올렸다. 계산상으로는 4퍼트로 보기를 해도 우승이 가능했던 상황. 5m 남짓한 거리에서 퍼터로 친 볼은 그대로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 등극을 자축하는 멋진 이글이었다.
근육질의 장타자 켑카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CJ컵(총상금 950만달러)에서 우승하며 한국 땅에서 ‘1인자’의 자리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켑카는 21일 제주 클럽 나인브릿지(파72·7,196야드)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8개, 보기 2개를 묶어 8언더파 64타를 쳤다.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를 기록한 그는 게리 우들랜드(미국·17언더파)를 4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PGA 투어 2018-2019시즌에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켑카는 특히 이번 주 발표되는 세계랭킹에서 생애 처음으로 1위에 오를 예정이다. 그는 “우승을 통해 세계 1위에 오르는 게 꿈이었는데 한국에서 꿈이 이뤄져 환상적인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 3위로 이 대회에 출전한 그는 1, 2위였던 저스틴 토머스(미국)와 저스틴 로즈(잉글랜드)를 밀어냈다. 2017-2018시즌 US 오픈과 PGA 챔피언십 등 메이저대회에서만 2승을 거둔 켑카는 통산 5승 중 최근 11개 대회에서 메이저 2승을 포함해 3승을 거두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PGA 투어 2017-2018시즌 올해의 선수도 수상했다.
미국의 브룩스 켑카가 21일 PGA 투어 CJ컵 4라운드 마지막 18번홀에서 우승과 세계 1위 등극을 자축하는 이글 퍼트를 성공한 뒤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켑카는 전날 3라운드에서 4타 차 단독 선두에 올라 손쉽게 우승 고지를 점령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복병’ 우들랜드의 거센 추격을 받았다. 5타 차 4위로 출발한 우들랜드는 전반에 버디만 6개를 골라내 한때 14언더파로 공동 선두를 이뤘다. 앞서 경기를 펼친 우들랜드가 따라붙으면 켑카가 달아나는 양상이 이어졌다. 팽팽하던 승부는 15번홀(파4)부터 켑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 홀에서 중거리 버디 퍼트를 잡아 1타 차로 앞서 나간 켑카는 16번홀(파4)에서 보기 위기를 버디로 바꾸며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페어웨이 벙커에서 친 두 번째 샷을 그린 왼쪽의 풀이 깊은 러프로 보낸 켑카는 어프로치 샷을 한 볼이 한참을 굴러 깃대에 맞고 홀 속으로 사라지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2타 차 선두로 마지막 홀을 맞은 켑카는 깔끔한 이글로 완벽한 팬 서비스를 했다. 우승상금 171만달러(약 19억3,60만원)를 받은 그는 3개 대회를 치른 초반이지만 상금랭킹에서도 1위에 올라 2018-2019시즌 투어 무대를 호령할 ‘대세’ 후보임을 선언했다.
지난 2월 피닉스 오픈에서 투어 3승째를 거뒀던 우들랜드는 이날 9언더파로 분전을 펼쳤으나 후반에만 버디 5개와 이글 1개로 7타를 줄인 켑카를 추월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라이언 파머(미국)는 10언더파 62타를 몰아쳐 새로운 코스레코드를 작성하며 라파엘 카브레라 베요(아르헨티나)와 함께 공동 3위(15언더파)에 올랐다. 지난해 첫날 9언더파 코스레코드를 만들며 우승했던 저스틴 토머스(미국)는 공동 36위(5언더파)로 대회를 마감했다.
김시우(23)가 공동 23위(7언더파), 2부 투어 상금왕·신인왕에 오르고 이번 시즌 PGA 정규투어에 데뷔한 특급 신인 임성재(20·이상 CJ대한통운)는 공동 41위(4언더파)에 올랐다. 7명의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소속 선수 가운데는 맹동섭(31)이 공동 41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한편 CJ 측은 국내 최초 PGA 투어 정규대회 CJ컵이 올해 전 세계 226개국에 중계방송돼 10억 가구에 CJ 브랜드를 알리는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나흘 동안 대회장을 직접 찾은 갤러리는 약 4만명으로 집계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현장에 머물며 PGA 투어 관계자들과 함께 대회를 직접 챙겼다.
/서귀포=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