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사망을 실종 18일 만에 인정했다. 하지만 카슈끄지가 우발적인 주먹다짐 끝에 사망했다는 사우디 정부의 석연치 않은 발표내용에 의혹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발표 내용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는 하나도 제시되지 않은데다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온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연루 여부는 일절 언급되지 않자 사우디에 우호적인 미국은 물론 주요 유럽국가와 국제기구는 진실을 규명하라며 사우디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20일(현지시간) 외신들은 이번 사우디 발표에 세부사항이 누락됐다며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고 짚었다. 이날 사우디 검찰은 지난 2일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서 용의자들과 대화를 하다가 주먹다짐을 벌여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다만 용의자들의 신원이나 문제의 대화 내용, 카슈끄지 시신의 행방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최대 의문점은 사우디 당국이 밝히지 않은 카슈끄지 시신의 행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한 사우디 관리를 인용해 “사우디 파견팀이 카슈끄지의 시신을 ‘현지 협력자’에게 처리하라고 넘겼다”고 전했다. 카슈끄지 시신의 ‘토막설’이 제기되는 가운데 ‘협력자’라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는 사우디가 시신 상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들이 귀국에 관심을 보이던 카슈끄지를 만나기 위해 터키로 건너갔다는 당국의 설명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그가 사우디 정부의 결혼승인 서류를 얻으러 총영사관에 갔다는 카슈끄지의 터키인 약혼녀의 진술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의 자발적 귀국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왜 많은 사람들이 터키로 갔는지도 의문이다. 사우디 당국은 카슈끄지 사망에 관여한 18명을 구금한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이들 중 법의학 전문가가 포함된 점도 석연치 않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브루스 리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범행 증거를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법의학 전문가가 필요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총영사관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터키 당국이 입수한 살해 당시 상황이 녹음된 오디오에는 그가 일방적으로 고문을 당했으며 살해가 우발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나온다.

사우디가 공식 발표까지 이처럼 오래 시간을 끈 점도 석연치 않다. 일각에서는 터키 당국이 피살 의혹을 제기하고 사우디 최고위층이 조사를 지시하고 나서야 터키에 파견됐던 팀이 곤경에 빠질 것을 우려해 뒤늦게 사건 은폐에 나섰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무엇보다도 사우디 왕국이 답해야 할 또 하나의 질문은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다. 한 전직 미국 외교관은 “이번 일은 왕세자 승인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하며 사우디의 정치·사회 재편을 이끌고 있는 그가 이번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매우 약하다고 지적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