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CVID' 강조한 세계 목소리 허투루 들으면 안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마무리하고 21일 귀국했다. 문 대통령은 유럽 방문 기간 동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와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에 참석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번 순방의 가장 큰 목표는 대북 제재 완화와 관련해 유럽 각국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문 대통령의 유럽 순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문 대통령은 영국·프랑스 등 정상들에게 “북한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비핵화를 진척시키면 대북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냉랭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은 물론이고 아셈 의장성명에서도 제재 완화 대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를 우선 촉구했다. 지금은 북핵 해결에 집중할 때라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풍계리 핵실험장과 영변 핵시설 폐기 등 단편적인 언급만 하고 있을 뿐 아직 핵 리스트 신고도 꺼리고 있다. 과거에도 핵 신고와 사찰 단계에서 협상이 번번이 틀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북핵 문제는 입구에도 들어서지 못했다.

그러잖아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서두르지 마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어려운 과정일 수밖에 없는 비핵화 협상을 시간에 쫓기듯 하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확실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2차 북미정상회담이 내년으로 연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종전선언과 철도 연결 등 남북 경협을 너무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남북관계에서 과속하면 대북 제재의 틈만 벌어지게 할 뿐이다. 이는 결국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과제인 북핵 문제를 더 꼬이게 한다. 현시점에서 정부는 국제 공조를 통해 북한 핵을 우선 처리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대북 제재 완화와 경제협력은 핵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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