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의 맛은 묘하다. 더없이 달콤하지만 또 다른 우승이 채워지지 않으면 금세 입안이 씁쓸해진다. 그 틈으로 조바심이 스며들어 슬럼프라는 이름으로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트로피 좀 들어봤다 하는 선수들은 우승이 주는 두 가지 맛을 모두 잘 알고 있다. 쓰디쓴 슬럼프를 거쳐 짜릿한 우승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빅 네임’들이 절치부심 이번 주 제주 결전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시즌 총상금 8억원 대회는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25~28일 제주 핀크스GC)이 마지막. 올 시즌은 그냥 넘길 수 없다는 각오로 시즌 첫 승에 배수진을 치고 나선다.
이정민(26·한화큐셀)은 2015시즌 3승 등 통산 8승을 올린 전통의 강자다. 하지만 마지막 우승은 2016년 3월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 벌써 2년 반도 더 지난 얘기다. 지난 시즌은 출전한 대회 중 컷 탈락이 절반 이상이었다. 부상 관리를 잘 못해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았고 스윙 교정 과정에서 길을 헤맸다. “하고 싶은 스윙과 할 수 있는 스윙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했다”는 자체 진단이 나왔다. 이정민은 하고 싶은 스윙을 따라 하기보다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뒤 올 시즌 꽤 안정적인 성적으로 재기 가능성을 확인했다. 지난달 초 KG·이데일리 오픈 준우승과 21일 끝난 KB금융 스타챔피언십 공동 6위 등 톱10에 5번 들었고 10위권 성적을 여러 차례 보탰다. 상금랭킹 28위. 재기 조짐은 지난해 서울경제 클래식 3위에 오를 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정민은 2012년 이 대회 우승자. 6년 전 우승과 지난해 발견한 재기 신호까지 특별한 기억을 안고 티잉 그라운드에 오른다. 2016년 우승으로 얻은 2년간의 시드(출전권) 보장은 올해까지다. 우승 각오가 남다른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보경(32·요진건설)은 KLPGA 투어의 살아있는 역사다. 최다 경기 출전과 최다 컷 통과 기록을 동시 보유하고 있다. 대회 출전 기록은 서울경제 클래식 참가와 함께 297개로 늘리게 된다. 그런 김보경은 벼랑에 몰려있다. 2015년 4월 롯데마트 여자오픈이 마지막 우승인 그는 2년 시드 보장이 지난 시즌으로 끝났다. 올 시즌 상금랭킹은 딱 60위. 60위 안에 들지 못하면 잔류냐, 강등이냐를 놓고 시드전으로 밀려난다. 시즌 종료까지 2개 대회만 남긴 상황.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2013년 2승 등 통산 4승의 김보경은 이중 2승을 제주에서 수확했다.
안신애(28)는 화려한 외모와 패션으로 골프장 밖에서 더 화제가 되곤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통산 3승을 거둔 무시 못 할 강자라는 사실. 마지막 우승은 2015년 9월 KLPGA 챔피언십인데 이 우승으로 4년 시드를 보장받았다. 2019시즌까지는 시드 걱정이 없다. 안신애는 지난해부터 국내 투어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를 병행하고 있다. 지난 한 해 일본의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가장 많이 검색된 스포츠선수가 안신애일 정도로 일본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문제는 성적. 체력 문제 등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생각보다 안 풀리는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12개 출전 대회 중 컷 탈락이 7번이다. 돌파구 마련에 나선 안신애는 서울경제 클래식에서 2016년 5위에 오른 기록이 있다.
장수연(24·롯데)도 통산 3승을 자랑한다. 3승이 모두 마지막 날 신들린 버디 퍼레이드를 앞세운 역전승이다. 올 시즌 아이언 샷 난조로 고생하면서 예전 스윙과 새로운 스윙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지난 시즌 우승도 9월 KLPGA 챔피언십에서 터졌듯 뒷심을 발휘할 기회는 남아있다. 아마추어 시절이던 2010년 서울경제 클래식에서 준우승한 기억도 있다.
한편 11회째인 서울경제 클래식에는 올 시즌 필드를 주무르고 있는 오지현(22·KB금융그룹), 배선우(24·삼천리), 최혜진(19·롯데), 이소영(21·롯데) 등이 출격해 2018시즌의 여왕을 향한 도전을 이어간다.
/서귀포=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