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더 키우는 부동산대책] 신혼부부 VS 4050·무주택 VS 1주택...세대·계층간 '깊어진 골'

40대 무주택자 "신혼희망타운 조성에 오히려 역차별"
'무주택 추첨물량 확대'에 1주택자 "갈아타기도 차단"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정부 잣대로 일방 추진" 지적

서울 송파구 가락동 주민들로 구성된 ‘성동구치소 졸속개발반대 범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3일 오금공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제공=대책위원회

현 정부가 주택 정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서민 주거안정’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각종 행사장뿐만 아니라 주택 정책을 꺼내놓을 때마다 서민 주거안정을 서두에서 강조해왔다. 정부는 이에 따라 청약과 대출제도를 무주택 실수요자 위주로 개편하거나 공공주택 물량을 최대한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가 ‘서민’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특정 계층 및 세대에만 방점을 찍는 정책을 시행하다 보니 각종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선 정부 정책으로 촉발된 갈등 중 양상이 다소 극렬해지는 사안은 공공택지 지정 관련이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서울 일부 지역과 수도권 지역에서 공공택지를 조성해 공급량을 늘린다는 계획을 꺼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부 지역 주민들의 반대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23일 역시 서울 송파구 가락동 주민 등으로 구성된 ‘성동구치소 졸속개발반대 범대책위원회’가 옛 성동구치소 부지를 신규 공공택지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의사를 보이는 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신혼희망타운’ 조성을 둘러싼 논란도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신혼희망타운은 무주택자인 결혼 7년 이내의 신혼부부 또는 1년 내 혼인신고 예정인 예비부부에게 주변 시세보다 20~30%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아파트를 말한다. 국내 혼인율과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다. 하지만 정부가 일대 시세보다 싼 값에 공급하는 탓에 ‘로또 당첨’ 기회가 누구에게 돌아가나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는 셈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 40대 청원자가 “아이가 커가는 40대 무주택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라면서 “자녀를 키우고 있는 40대 무주택자들에게 혜택이 전혀 없는 정부 정책을 지켜보면 화가 난다”고 썼다. 여기에 신혼희망타운의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예상돼 ‘진짜 서민’ 계층에는 부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세대 갈등’뿐만 아니라 ‘계급 갈등’까지 맞물리는 모양새다. 이에 각종 커뮤니티 등 온라인 일부 공간에서는 신혼희망타운 조성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뿐만 아니라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을 확대한 것도 중장년층 무주택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불만이다. 정부가 ‘무주택 서민층’을 위해 가점제 비율을 늘린 탓에 가점에서 불리한 수요자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젊은 세대에만 혜택을 배당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주택자와 1주택자 간의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9·13대책 후속으로 청약제도 개편을 알리면서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정부가 마련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령’에는 분양하는 아파트 중 추첨제 물량의 75%를 무주택자에게 우선 배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무주택자는 청약 기회가 확대돼 다소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1주택자는 불만이 높아지는 것이다. 추첨제는 전용 85㎡ 이상의 중대형 평형 위주로 진행되는데 상대적으로 고가의 주택까지 무주택자에게 우선 배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또 기존에 착실하게 자금을 마련해놓은 1주택 실수요자들의 ‘갈아타기’ 수요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차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신혼부부 특별공급에서도 집을 보유한 이력이 드러나면 공급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부분 역시 불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즉 서울의 전세금보다 싼 값의 수도권 또는 지방 주택 1채를 보유한 이력조차도 특별공급 대상에서 배제되자 나오는 불만이다. ‘집 가진 게 무슨 죄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정부가 사전에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정부의 잣대만으로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한 까닭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자의적으로 서민의 개념을 정하고 특정 계층 및 세대에만 혜택을 몰아주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회적으로 갈등이 커지고 있다”면서 “사전에 충분한 여론 수렴과 함께 정부가 생각하는 ‘서민’만이 아닌 국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주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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