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작 사건의 주범인 ‘드루킹’ 김동원 씨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아내 유사강간 및 폭행 혐의 등 관련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댓글 조작 사건의 주범 ‘드루킹’ 김동원씨 등 일당이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재벌기업을 인수·합병해 얻은 수익금으로 공동체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밝혔다.
특별검사팀은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씨 등 9명의 댓글조작 사건 첫 공판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내부 문서 및 진술 등을 공개했다. 특검에 따르면 김씨가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전한 자신이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의 소개 문서에서 “동학농민혁명군처럼 혁명을 위한 조직으로 일사불란한 의견과 행동, 조직 등을 갖췄다”고 적혀 있었다.
또한 이 문서에 기재된 경공모의 규약에 “정치적 비밀결사체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재벌을 대신해 기업을 소유하면서 국가와 소통하고, 한민족의 통일을 지향하며 매국노를 청산한다”는 등의 결성 목적이 담겨 있었다. 조직원들의 삶에 “요람에서 무덤까지 개입한다”는 등의 문구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김씨는 이 문서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나눈 대화라며 한 토막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강연에서 만난 유 전 장관에게 자신이 하려는 일을 소개하자 “하려는 계획이 지배구조 개혁인데, 작은 기업도 아니고 삼성에 대해서도 가능하겠느냐. 그러려면 생물학적 생명까지 걸어야 한다”는 반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에 경제 혁명에 성공하고 사람 사는 세상의 원칙을 만들 수 있다면 생명은 얼마든 걸 수 있다”고 답변했다고도 전했다.
그 외에도 김씨는 경공모가 2009년 네이버의 ‘숨은 카페’로 시작해 2014년 열린카페를 개설하고 온·오프라인 모임을 하는 단체로 발전했고, 회원들을 7단계 등급으로 분류해 3개월 넘게 유료 강의 청취 등 활동을 해야 숨은 카페에 가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숨은 카페 회원은 500여명, 열린 카페 회원은 4,500여명이라는 주장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검은 김씨 일당이 김경수 지사와 접촉·공모해 2016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한 불법 여론조작을 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올해 6·13 지방선거까지 댓글조작을 계속하는 대신 지난해 연말 김씨의 측근 도모 변호사를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에 앉히기로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날 법정에서 김씨가 정치권에 접근한 경위에 대한 도 변호사의 진술도 공개했다.
도 변호사는 “당시 경공모의 최종 목적은 재벌을 적대적 인수·합병(M&A)해 기업지배 활동으로 얻은 이익으로 ‘두루미 마을’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것이었다”며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보니 대선 국면에서 국회에 영향력을 확대해 인수합병 관련 법 개정 등 정치권의 도움을 받으려 한 듯하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외부용’으로 제작된 경공모 홍보자료에는 “대선에 승리해 정권을 장악하고,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재벌 지배 및 구조 변경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특검팀은 설명했다.
이 자료에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강력한 정부에 의한 재벌 통제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종인 식’과는 차이가 있다. 소액주주의 조직적 결집으로 지배구조를 변경하려는 목적”이라고 적혀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오사카 총영사 인사 청탁도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도모 변호사는 김씨에게 전달한 편지에 “제가 일본 대사로 가려 하는 것은 개인의 영달이나 명예가 아니라 일본의 자금력을 동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었다. 또한, 김씨가 김 지사에게 보낸 메시지에도 “우리는 자리를 탐하는 양아치가 아니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탬이 되는 ‘개성특별행정구 프로젝트’를 하면서 일본의 자금을 끌어들일 만한 직위가 필요했다”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인사 청탁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자 실망스러워하는 모습도 드러났다. 도 변호사가 김씨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도 변호사는 “(김 지사가)저희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거추장스러워해 토사구팽을 당하고 있다”며 “우리가 그간 한 작업을 언론이나 야당에 알리고 ‘양심선언’을 하자는 이야기까지 회원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김씨에게 항의를 한 바 있다. 다만 도 변호사 측은 수사 단계와 공판 과정에서 줄곧 “드루킹의 범행에 가담한 적이 없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진표 인턴기자 jproh9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