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앞에 유가 정보가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휘발유, 경유, 액화석유가스(LPG) 부탄에 부과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 개별소비세, 지방세(주행세), 교육세 등 이른바 유류세 4종을 내달 6일부터 6개월간 현행보다 약 15% 내리기로 24일 결정했다. 서민의 기름값 부담을 덜겠다는 목적이지만 유류세 인하로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이 일반적으로 더 많은 할인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리터 당 유류세는 휘발유가 746원에서 635원으로 약 111원 낮아지며 경유와 LPG 부탄에 붙는 유류세는 리터당 529원에서 79원 내린 450원으로, 185원에서 28원 내린 157원으로 각각 내려간다. 유류세 인하분이 그대로 소비자가격에 반영된다면 부가가치세까지 고려한 리터 당 가격 인하 최대 폭은 휘발유 123원, 경유 87원, LPG 부탄 30원에 달한다. 휘발유를 한 달에 100리터 소비하는 경우 유류세 인하로 최대 7만3,800원(ℓ당 123×100ℓ×6개월)의 세금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가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서민의 기름값 부담을 덜어주며 내수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사례 분석을 토대로 보면 유류세 인하 효과는 고소득층이 더 많이 누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2012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3월 유류세를 인하하고 난 뒤 2분기 휘발유 소비량을 분석한 결과 소득 하위 20% 가구는 월평균 880원의 가격 하락 혜택을 누렸다. 반면 소득 상위 20% 가구는 월평균 5,578원을 절감했다. 소득 상위 20%가 누린 혜택이 하위 20%의 약 6.3배에 달하는 것이다.
유류세를 내리면 휘발유 소비가 많은 계층이 혜택도 상대적으로 많이 보게 되는데, 주로 고소득층이 자가용 승용차 등을 많이 이용하고 배기량이 큰 차를 보유하는 경향 때문이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유류세 인하 혜택을 두고 “역진적인 측면이 있다”라고 전했지만 이번 대책의 목적이 가처분 소득을 늘려주는 것이며 저소득자일수록 가처분 소득 증가 비율은 훨씬 크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조세부담 역진성은 소득이 적은 계층이 세 부담을 더 많이 지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고소득자의 평균세율이 저소득자보다 낮은 현상이 일어날 때 사용한다. 유류세나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는 애초에 역진성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있다. 고 차관의 발언은 유류세 할인 혜택마저도 고소득층이 더 누릴 가능성이 있음을 에둘러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고 차관은 저소득층 혜택을 확대하려면 “소득에 따른 유류세 환급이 가장 좋지만 그런 시스템을 만들려면 최소 6개월이 걸린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강조했다.
유류세 인하가 실질적인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지도 문제다. 국제유가 상승이 유류세 인하 효과를 상쇄할 경우 소비자가 체감하는 유가 하락 폭은 줄어든다. 2008년에는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유류세 인하 후에도 몇 달간 휘발유 가격이 올랐다. 기획재정부는 “유가가 그때처럼 단기 급등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외부 기관의 대체적인 전망”이라며 이번에는 가격 인하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유가를 제외하더라도 유류세 인하분만큼 소비자가격이 내려간다는 보장이 없는 점도 지적의 대상이다. 정부는 한국석유공사의 유가 정보 서비스(오피넷)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많고 알뜰주유소 도입 후 주유소 가격 경쟁이 확대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소비자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국은 정유사·주유소·충전소 업계 간담회를 열어 유류세 인하분을 판매 가격에 신속하게 반영해달라고 요청하고 정유소·주유소 간 가격 담합 여부도 감시할 방침이다.
/이다원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