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미국에서 연수 중이던 2년 전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간 대권 경쟁이 불을 뿜던 때다. 공화당의 외피를 둘렀지만 속을 까보면 철저히 비주류였던 트럼프는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이 유별났다. 그는 대선 기간 내내 기성 미디어가 ‘가짜뉴스’를 퍼 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 스캔들’ ‘탈세’ 관련 기사는 물론이고 유세장에 운집한 지지자를 교묘히 가리는 카메라 앵글까지 거론하며 기성 언론을 나무랐다.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컸던 만큼 자신의 ‘인터넷 방송(트럼프 타워 라이브)’을 론칭한 것은 일면 당연했다. 타임은 그런 트럼프를 두고 ‘정치에서 아마존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논평했다. 소매업 혁명을 아마존이 일으켰듯이 트럼프가 유권자와 정치인 사이에 언론이라는 ‘미들 맨’을 없애는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돌이켜보면 소셜미디어는 그의 당선에 일등공신이 됐다. 유튜브 등으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콘텐츠와 유권자의 접촉을 늘리고 지지자 결집 효과도 거둔 덕분이다.
최근 한국에서 빚어지는 가짜뉴스 소동도 많은 부분에서 미국과 닮아 있다. 일단 권력자들은 자신을, 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를 불편해한다. 정권에서 지목하는 가짜뉴스의 진원지(트럼프는 기성 언론, 문재인 정부는 주로 유튜브 방송)만 다를 뿐 ‘성가신 쇠파리(언론)를 싫어하는 권력자’라는 본질은 똑같다.
혹자는 가짜뉴스는 뉴스가 아니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누가 가짜뉴스를 판단하나. 정권에서 솎아내는 것이 정당한가. 국민은 그럴 능력이 없나. 가짜뉴스 소동에서 오만한 선민의식의 변종을 보는 것 같아 거북하다. 사실과 근거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뉴스는 생명력이 없다. 설령 살아남아도 ‘그들만의 리그’에서나 통할 ‘시한부 뉴스’일 뿐이다. 이것이 시장의 작동원리다. 굳이 가짜뉴스를 걸러내기 위해 입법에까지 나서는 것은 과잉 대응이나 진배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명예훼손·무고 등 이미 있는 법으로도 얼마든지 가짜뉴스 유포자를 처벌할 수 있지 않은가. 자칫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는 오해를 살 우려도 다분하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정부가 더 투명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가짜뉴스로 지목하는 것의 상당수는 ‘음모론’에 기대고 있다. 달리 보면 깜깜이식 일 처리가 많다는 뜻이다. 대북관계에서 경제정책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각종 의혹에 꼼수나 모르쇠로 일관하며 과속 질주한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리더라면 껄끄러운 기사에 가짜뉴스라는 꼬리표를 붙이기 전에 스스로 주변부터 살피는 것이 순서다. /shlee@sedaily.com